조회 : 246

꽃진자리


BY 자향 2004-06-04

 

 이사오면서 손바닥 안에 드는 작은 화분을 몇 개 선물받았다. 


안개 꽃잎처럼 작고 앙징스런 붉은 꽃들이 자잘하게 피어 한창 이쁘더니.. 


어느 날 보니 꽃은 다 시들어 말라들고   


꽃빛깔을 잃은  꽃대궁이 삐죽 볼품이 없었다. 

 

 가위로 잘라줘야겠구나..품은 생각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치며 볼품없이 갈색빛으로 말라드는  


꽃대궁을 바라보던 어느 날, 


꽃진자리란 시어가 떠올랐다.

 


 꽃진자리처럼 


 서럽고 볼품 없는 사랑은 눈물로 남고 


흐드러진 봄 꽃 사이에


어쩜 한시절 피었다지기론


 열정어린 몸짓도 매 한가지


 꽃진자리 애닯아  


지나온 아름다움만 기억하려네. 


말라버린 꽃조차 버리지못함은 


 내가 사랑해야 할 내모습!!

 


 
꽃가위를 꺼냈다가 이런 마음이 스치며    


차마 꽃대궁 싹뚝 잘라주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다. 


풀꽃도 한세상 살다가는 것..


내 눈에 거슬린다고 화려했던 꽃대궁 싹뚝 잘라내지 못함은  


나도  이젠 시들어가는 나이에 접어든  마음때문이었을까? 


다행히도 남편은 지저분해진 꽃을 탓하지 않아... 


그대로 간이 식탁 위에 분 세 개를 나란히 두었는데... 


요즘 그 누렇게 말라들어 가는 꽃잎사이에 


 새 꽃망울이 맺혀서  


초롱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워낙 무성했던 꽃진자리가 많아서 


 몇 개 송송 피어나는 꽃잎이  


화사롭지는 않지만, 


열심히 밀어올리는 생명력강한 꽃잎을 보며


게을러서 맛보는 여유와  


생명에의 외경에 흠뻑 젖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