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어느 토요일. 시조부모님 성묘겸 고향방문을 목적으로 직계가족이 모두 모여 관광버스를 빌려 1박 2일 일정으로 봄나들이 길에 올랐다. 출발 몇일전부터 동서와 함께 제수음식과 간식,
비상약 준비로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며 이렇게까지 힘들게 장만하게하시는 시부모님을 원망(?)하면서 궁시렁 궁시렁..... 준비 끝~. 출발~~~~ 차가 서울을 벗어나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하면서 오가는 술잔속에 싹트는 情을 느끼면서, 도란도란 야그 꽃을 피웠지라. 야트막한 야산을 개간한 밭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묘.
약간 높은 지대 한가운데있는 묘는 바람이 사방으로 통해서인지
시원을 넘어 춥고 썰렁했다. 전쟁중에 부모님을 잃고 조부모님밑에 어렵게 성장하신 시아버님. 부모님묘를 남부럽지않은 모습으로 단장하고 싶어하셨는데 풀한포기, 나무 한그루 그 흔한 상석하나도 건드리지도, 세우지도 말란다.
자손들에게 害가 간다고...... 그런 아버님 생각을 아는 나는 준비하는동안 궁시렁거림이 죄스럽고, 민망하고......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라오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남은 왜일까? '어렵게 살아왔지만 이렇게 많은 식솔들이 생겼습니다.'라고 인사드리는 아버님 가슴 저 밑바닥에 뿌듯함이 내게도 전해져 오는것을 느낄수있었다.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며 인사드리고, 드디어 선운사 아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말이 호텔이지 고등학교시절 수학여행지의 잠자리를 방불케하는 큰방하나에 몇 개 의 작은방을 덤으로 예약해놓으셨다. 저녁식사를 하고 고향에 사는 사촌 시누이가 담궈온 복분자 술을 마시던 큰시누이가 권하기를 몇번 극구 사양하던(?) 나와 동서도 못이기는 척하며 어울려 홀짝홀짝.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복분자 酒'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술냄새도 안나고, 너무 달지도, 그렇다고 싱겁지도 않은 술을 맛난 쥬스 마시듯 수~울 술 마셨더니, "한잔 마셔봐, 몸에 좋대, 이건 술도 아냐"하며 권하던 큰시누이가 "이건 쥬스가 아냐, 그렇게 먹다 어쩔려구."하며 걱정을 했을땐 이미 1.8L 물병에 담아온 술은 "원샷","완샷"을 연발하며 마셔 한병도 모자라 반을 더먹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방바닥은 따땃하고, 종이컵에 가득 부어 꿀꺽꿀꺽 겁없이 마셨던 탓에 얼굴은 새색시 연지바른것마냥 발그스레해지고, 술먹은 사람 말많아 진다고 입주변이 가벼워질 때 쯤 남편이 무도회장가자고 왔는데 '얼마만의 무대인가!' 주저없이 일어서 나갔는데 바닥이 자꾸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명 들어올땐 고른 바닥이었는데 움푹패이기도하고, 불룩 나오기도하고 벽붙잡고 손잡고 간 무도회장. 현란한 조명과 쾅쾅거리는 음악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무도회장에서 구여운 나의동서는 입이 풀렸는지 평소에 없던 말을 어찌나 주절거리던지. 맏며느리인 난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말다하는 동서가 얼마나 부럽던지. 이 놈의 술은 위,아래 구분도 하나봐. 내가 주당도 아닌데.... 무도회장에서 동서 주사를 받아주는사이 술 깨고, 그때까지도 흐느적거리는 동서 화장실로 밖으로 데리고 다녔더니, "형님! 정말 잘 할께요."를 연발하는데 밉기는커녕 너무 이쁜동서. 결국 동서는 선운사에 몽글몽글 맺힌 동백꽃도 못보고 서울로 올때까지 고개도 못들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 형님, 미친척하고 나처럼 엎어지지. 그럴때 아니면 언제 우리가 할 말해요" (우~엥~ 그럼 그 모든게 계획된일.....) 그렇게 우리 가족의 짧은 봄나들이 끝이났지만 가슴 찡하고, 아름다운 날로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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