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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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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BY 낸시 2004-05-24

일요일, 가게 전화가 따르릉 울린다.

일요일은 영업을 하는 날이 아니니 전화를 받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에 그냥 내버려둘까 하다 문득 한국에 간 남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를 받으니 남편이다.

한국은 이른 새벽일텐데 시차 적응이 안되어 잠을 못이루는 모양이다.

남편 목소리가 무척이나 귀에 반갑다.

"당신이 없으니 밥이 먹기 싫다."

"그렇지? 나도 당신이 없으니 재미없다."

나이도 잊고 둘이 소근거린다.

 

어느 택시 운전 기사가 우리에게 했던 말이  살면서 가끔 떠오른다.

결혼해서 둘이 쓸 물건을 사서 나르는 우리를 보고 그 아저씨는 말했었다.

지금은 세상에 둘 밖에 없는 것 같지만 아이들이 태어나면 아이들에게 정신을 뺏겨 부부는 서로 소원해 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이 다 자라서 독립해 나가고 나면 지금보다 아마 서로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테니 두고 보라고 하였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로 인해 참으로 많이 다투며 살았다.

과연 나는 무엇을 사랑한 것이었을까 의문을 품은 적도 많았다.

아마도 내가 사랑한 것은 내 남편이 된 남자가 아니고 그저 사랑을 사랑한 것이거나 내 마음 속에 내 멋대로 그린 허상을 사랑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금 남편이 없는 이 곳이 마치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텅 빈 도시처럼 느껴진다.

남편이 돌아올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나 답지 않은 짓이다.

신혼 때 부터 남편이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오거나 외박을 하거나 혼자서 쿨쿨 잘 자고 잘 먹던 사람인데 남편이 없는 요즘 정말 밥이 먹기 싫다.

나이들어 약해지니 서로 의지할 대상이 필요해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있으면 싸움벗이요, 없으면 그리운 벗이라더니 남편이 내게 그런 사람이 되었나보다.

 

그저 바라기는 둘이 세상을 떠나는 시간이 비슷했으면 하는 것이다.

남편의 기침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바라고 또 바라는 바이다.

남편이 나보다 세상을 먼저 떠난다고 가정하면 씩씩하고 용감하게 남은 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

죽고 사는 것마저 마음을 비우고 산다고 잘 난 체 하길 좋아하는 나지만 혼자는 싫다.

이번 정기 검진의 일차 소견은 이상이 없다고 하니 천만 다행이긴 하나 아직도 기침소리가 마음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