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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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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의 유별난 나들이


BY 박하사탕 2004-04-19

"누구 엄마! 모레 10시까지 공항버스 타는데로 나와~ 늦지말구 알아써?"

"아! 그려 저번에 얘기 했잖여 그리고 내가 언제 늦는거 봤어?'

오랫동안 모임을 함께해온 한 엄마가 많이 아파서 병문안을 가기로 해놓고

혹시 잊어 버렸나 의심이 들어서 꼼꼼한 회장이 확인을 한거였다.

다들 정신을 어디다 놓고 사는지 금방 들은 약속도 못들었노라고 부득부득 우긴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에 그 엄마 말도 일리가 있었다.

 

작년에 한 엄마가 좋은 일 이 있었다고 밥 을 산 적이 있었다.

덕분에 칼질 해가며 맛있게 먹었는데, 다른 엄마가 생뚱맞게 자기는 그날 일 이

있어서 못나와서 안 먹었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래서 자기가 뭘 먹었으며 무슨 이야기를 했노라고 증거를 댔지만 도무지 기억이

없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써 그럴 정도는 아닌데 큰일이라며 서로 심난해 했었다.

 

그래도 나는 약속을 정하면 안방문 앞에 걸려있는 달력에다 크게 표시를 해놓고

들락 거릴때마다 보게되니 다행히 잊어 버린적이 없었다.

한 엄마가 건망증도 심하고, 항상 늦게 나오는지라 어디를 갈려면 골치가 아플정도다.

그렇타고 혼자 뚝 떼놓고 우리끼리 갈수는 없어서 잔소리도 해보고 애원도 해 보지만

본인도 안된다는데야 어쩔것인가.

 

번번히 모임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제때 나와서 음식 시킨거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나면, 그때서야 허둥지둥 나타나니 도무지 그 속을 알수가 없었다.

다들 한마디씩 싫은 소리를 해봐도 그때 뿐이었다.

일 이 바빠서 그런거라면 이해라도 할텐데, 집에만 있는 사람이 그렇다고 아주 요란

스레 치장을 하고 나오느라 시간이 걸리는것도 아니다.

 

이번에도 멀리 가는 관계로 아침에 일찍 나서자고 내가 그렇게 주장을 하였건만 자기는

죽어도 10시전에는 못나온다고 고집을 부리니 사람 환장할 노릇이었다.

할수없이 그동안의 정 을 생각해서 내가 양보 하기로 하고 그러면 꼬옥 정시에 출발 하도록

제때 나오라고 신신 당부를 하였다.

 

지난 토요일 아침부터 일찍 서둘러서 약속 장소에 나가니 내가 제일 먼저 도착을 하였다.

조금 있으니 하나 둘씩 오는데 기특하게도 늦장꾸러기 엄마도 헐레벌떡 제시간에 도착을

하였다. 어찌나 이뿌던지 칭찬을 있는데로 해주고는 다들 우르르 버스에 올라탔다.

아줌마 다섯이 모이니 할말은 왜그리 많은지 와글와글 북새통이 따로 없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 눈치 보느라 조용하게 얘기 하다가도 어느새 목청이 커져 있었다.

 

한시간여를 달려서 김포공항에 도착을 해서 내리니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수가 없네.

오랫만에 공항에 와보니 시설도 달라졌고 어리둥절하니 촌 사람이 따로 없다.

어디로 가야 되는지 일일이 물어가며 갈려니 다리도 아프고 기운이 빠졌다.

거기에다 가서 먹을꺼라고 이마트에서 이것저것 잔뜩 샀더니 짐이 장난이 아니다.

다들 바쁘게 나오느라고 아침도 못 먹어서 눈에 보이는것 마다 맛있겠다고 집어

넣었으니 보따리가 마치 어디 몇일 있다가 올 사람 짐 같다.

 

겨우 제대로 찾아 지하철을 타고 벗을 찾아가니 몇달동안에 너무나

야윈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워낙 빈틈이 없이 살던 사람이라 아픈 와중에도

집안이 말끔하니 정리 정돈이 되어 있었다.

서로 반가워하며 수다를 떨다가 갈때 사가지고 간 음식들을 펼쳐 놓았다.

아픈 사람이라 죽 을 사가지고 갔더니 자기도 우리와 같은걸로 먹겠다고 했다.

김밥과 초밥, 닭 강정, 떡,그리고 사라다, 과일까지 푸짐하게 차려놓고 소풍온것마냥

편하게 앉아서 먹으며 얘기를 주고 받았다.

 

친정 가까이 이사가서 요양을 하는 모습을보니 그래도 다행이라 여겨졌다.

너무 오래 있기가 미안해서 적당히 있다가 일어서서 다음 모임때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바로 앞에 산 이 있어서 이제 막 돋아나는 새순 이파리들이 연초록

빛으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우리들은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듯 구경 하느라 이쪽 저쪽을

두리번 거리니 다른 엄마가 자기는 바쁘다며 빨리 가자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어이~ 그렇게 급하면 혼자 먼저 가랑께 우리는 꽃구경 좀 하다가 갈꺼야~."

"안돼! 같이 가야지 얼릉와! 아이구 천하태평이네 ."

우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팔자걸음으로 온갖 구경 다 해가며 어슬렁 거렸다.

 

날씨는 따사롭고, 라일락 꽃 향기는 지천으로 휘날리고 사람 마음이 어찌 설레지 않겠는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몹쓸병에 걸리는 세상인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앞만보고 가려고 하는지....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계절도 즐기면서 그렇게 사는거지.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누군가의 아픔을 보는 순간은 그래 인생 별거 아니야

아등바등 거리며 살 필요 없는거야. 그랬다가도 몇일 못가서 자신의 평소 습관대로

살아간다. 먼 훗날의 행복을 위해 지금 누릴수있는 작은 즐거움마져도 외면한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