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녀딸이 8개월인데 폐렴으로 병원에 며칠째 입원중이다.
어린것에게 피검사 소변검사 링켈주사 등 지레 겁나서 울고 보채니
안쓰럽기 짝이 없다. 와중에 큰 손녀딸은 5살인데 찬밥 신세가 되었다.
에미가 병원에 있는지라 할미가 아침에 유치원에 챙겨보내는데
엄마랑 손길이 다르므로 불만스러운 눈치이다.
아침 일찍 우유팩에 빨대를 끼워주는데 엄마의 방식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할머니. 화살표 있는곳을 당겨서 거기에 빨대를 넣어야 해요"
"응. 알어. 그런데 이렇게 해서 다시 꼭 접으면 돼" 했더니
"우유가 흘러 나온다고 했어요" 엄마의 방식은 교과서 적이다.
할머니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은 손녀딸에게 나는 교육의 기회를 포착했다.
"이현아. 우유팩에 빨대를 끼워서 먹는 방법이 딱 한가지만 있는게 아니란다."
"아주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중에 오늘 두번째 방법을 배웠구나"
만4년 8개월짜리에게는 참 어려운 가르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융통성이 없고 자기 방법만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내 삶을 생각해 본다.
남편에게 늘 지적 받으며 살아온 부분이기도 하다.
한가지 방법만 고집하다가 답답하다는 소릴 들으며 살아왔다.
외골수 때로는 편견이라는 가혹한 평가도 받아보았다.
이현이는 참 올 곧게 잘 배우며 자라는 아이다.
그래서 늘 똑똑하다는 말을 듣고 자라고
거의 완벽주의에 가까운 교육을 받는다.
할미는 내심 바로 그게 걱정스럽다.
덜렁거리며 수월하게 자라지 않은 모범적인 아이에게서
어쩌면 융통성이나 너그러움이 상실될 수 있는 점이다.
이세상에 흑백논리처럼 위험한 것이 없고 목적에 이르는 각자기 방법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는 시각이 참 중요하다.
자기의 경험과 자기 방법만이 최고라는 빽빽한 아집 때문에 우리는 적을 사기도 하고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진리는 하나밖에 없으나 진리에 이르는 길은
여러갈래 일수가 있다. 진리를 왜곡시키는 것은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할 일이로되
진리에 이르는 길을 고집하다가 진리를 가로막는 일이 있어선 아니될 것이다.
이 아침에 이현이는 엄마의 방법으로 먹던 우유를 할머니의 방법으로도 먹어본다.
우유는 같은 맛이다. 엄마가 병원에 있는동안 어려움 속에서 이현이는
새로운 방법들을 도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