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 & 친정부모
시부모와 친정부모는 당연히 다르다. 본인도 결혼과 동시에
시어른들과 함께 생활을 했고 이 글을 시댁 식구들이나 남편도 읽을 것이지만
거짓 없이 쓰는 것이다. 솔직한 게 좋으니까 말이다.
한국의 결혼제도나 가정제도가 많이 자유로워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여전히 ‘시댁 위주, 친정은 그 다음’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여성이 결혼을 해서 호적을 옮기는 순간부터
‘인격과 개성이 있는 한 여성’이 아니라 ‘○○의 며느리’가 되기 때문.
시어른을 모시고 시댁 식구들에게 잘 해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친정부모를 모시거나 친정식구를 시댁 식구와 동등하게 생각하는 건
거의 ‘계란으로 바위 치기’만큼 위험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려면 양 쪽 어른들의 따가운 시선도 문제지만 남편과의 갈등과 불화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인데 거기에서 오는 서로에 대한 배신감, 실망, 좌절의 감정들이
계속 교차하며 힘든 결혼생활을 해야 하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남편이 전적으로 아내의 마음을 이해만 해 준다면 한국 여성들은 어떤 고통도 감수하는데 말이다.
여성에게 있어 '결혼'이라는 사건은 상당히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데
몇 십년을 부모에게 보살핌을 받다가 오로지 사랑하는 남편 하나만을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100% 옮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군대 가잖냐?”
라고 분명히 반문할 테지만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왜냐하면 남성은 군대에서 제대를 하면 다시 자신의 부모에게 돌아오고
결혼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은 친정부모를 모시지 않는 한 영원히 ‘친정부모 딸’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인 것.
특히 결혼과 동시에 시어른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된 경우엔 참으로 많은 난제들이 산재해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남편의 독립성 결여’이다.
아내와 결혼한 현실만 달라졌을 뿐이지 자신이 평생 살아 온 공간적 배경이나
친지, 이웃, 친구들은 여전히 그의 가까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의 남편’보다는 ‘○○의 아들’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 해 자신만을 바라보고
시집을 온 아내의 속상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해 갈등의 골을 깊게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여기서의 ‘독립성’은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의 독립 모두를 지칭한다. 성경, 창세기 2장 24절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
이 구절에 대해 <준비된 결혼이 아름답다>(저자 홍일권)라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먼저 부모 곁을 완전히 떠나는 것입니다. 부모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마음이 깊이 작용하는 사람은 결혼할 수 없습니다. 또한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더라도 부모를 떠나지 않는 것 때문에 결혼생활에 실패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온전한 결혼생활은 부모 곁을 완전히 떠날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떠난다는 의미는 혼례식을 올린다는 의미와 경제적인 독립, 그리고 법적인 결혼의 승인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결혼 후에 발생되는 문제 중에 가장 흔한 것은 부부와 그 양부모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입니다. 시부모와의 갈등 문제는 여자 측에 원인이 있는 경우, 남자 측에 원인이 있는 경우, 아니면 어른들의 문제로 나뉘어집니다. 이런 갈등의 대상들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부모를 완전히 떠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자가 결혼 후에도 독립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양부모에게 기대를 걸고 돈을 밝히는 것, 조금만 어려워도 부모에게 찾아가거나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것, 작은 일도 사사건건 부모의 도움으로 해결하려는 것, 부모가 살아 온 삶의 방식만 그대로 고집하려고 하는 것, 반찬 등 자기 어머니의 훌륭한 점만 은근히 자랑하고 부인을 위축되게 만드는 것 등입니다. 여지들도 지나치게 친부모를 의존하는데 있습니다. 부모가 곁에 없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거나 부모를 생각하면 조용한 곳에서 홀로 눈물을 터뜨리는 것, 조그마한 소외감만 느껴도 친정으로 달려가는 것, 이런 모습들은 부모를 완전히 떠나지 못한데서 비롯되는 현상들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부분은 부모를 떠난다고 해서 부모를 버리는 것으로 해석하면 큰 잘못입니다. 부모는 결혼 후에도 돌보며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는 마땅히 조언을 들어야 할 대상입니다.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부모에 대한 효를 등한히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부모에게 피해를 끼쳐 드리지 않고 부담을 덜어드리며 기쁨과 힘과 위로가 되어 드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 성경에서 가장 큰 과제로 여기는 것이
부모에 대한 효이나 그것을 잘못 해석하여 오해한다면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부부에게 있어 평생 풀지 못하는
‘근심의 숙제’로 남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를 보면 결혼하고 독립해서 부부 단 둘이 생활한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양부모와 생활하는 가정이 더 많다.
결혼한 후 남편에게 익숙해지기도 사실 힘든데 시어른, 시댁 식구, 시댁의 생활터전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변화된 모든 환경과 사람들까지 감당해내야 하는 한국 여성들...참 대단하다.
다른 나라 여성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난 절대 그렇게 못 살아.
스트레스 받고 살다가 먼저 죽겠다. 고충을 남편이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라고
손을 내저을 것이다. 만약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남편이 처가에서 생활한다면 과연 어떨까?
남편은 스트레스 엄청 받게 되고 그 짜증을 아내에게 모두 쏟아 부을 것이다.
장인, 장모와 생활하든 시어른과 생활하든 남편이나 아내를 믿고 모든 것을 옮긴 사람이게 세심한 배려를 반드시 해주어야 한다. 그건 ‘부부로서의 절대적인 의무’이다.
매운 시집살이 한 사람, 며느리 시집살이 더욱 시키고
임신 기간에 고생한 사람 지나가는 임신부 보면서
“다 애 낳고 살아!”, “난 고생을 얼마나 했는데!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시어른이나 장인, 장모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 보면서
“어른하고 살면 다 그래.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만 하고 살아!”...쯧쯧쯧..그러니 한국 여성들, 화병으로 모두 퍽 퍽 쓰러지지...
참 이상하다. 자신들도 그 시절에 고통스러웠을 것은 분명했을 터,
그 기간을 겪고 있는 후배들에게 “힘들지? 참 기특하고 용하네...젊은 사람이..”라고
위로를 먼저 해준 뒤 “하지만 참고 인내하다 보면 하나님이 반드시 복을 주실 거야.
조금만 참고 살도록 해”라고 얘기해 준다면 그것만큼 용기가 되는 것도 없을 텐데 말이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상대방을 다독거려 자신도 흐뭇하고 상대방에게 진정으로 존경받고 일석이조인데 그런 어른들 참 드물다.
TV프로그램에서 한국과 일본 여성의 결혼관에 대해 조사를 한 일이 있다.
“여성들이 결혼을 그리도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입니까?”
한국이나 일본이나 결혼에 대한 부담수치는 78.2%이었는데 한국의 부담 순위 1위는 ‘시댁과의 갈등’, 일본의 부담 순위 1위는 ‘직장 생활과 가사의 병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