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을 개놓고, 아이의 책상을 보니 일기장이 놓여 있다.
슬쩍 걷어 보니, 어제 아침 산행 이야기가 쓰여 있다.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 엄마에게 잘해야 겠다는 대단한 결심까지 덧붙이면서,
자주 쓰지 않던 근육을 쓴 탓에 다리 근육이 뭉쳤지만,
아이에게 좋은 시간이었다니 너무 고마운 일이다.
일요일 아침 산행은 지난 주부터,
친구의 초등학교 4학년 딸이 학원도 싫고, 공부도 싫다며 가출한 사건에서 비롯 되었다.
친구는 기가 막혀 어찌해야 좋겠냐며 나를 찾아 왔다.
"글쎄...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놈이군."
그 녀석 귀여운 얼굴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별로 큰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건강한 거지."
친구의 당혹스러워하는 이야기에 담담히 얘기하면서도,
내 아이가 아니여서 그럴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참의 얘기 끝에 나는
"아이들 데리고, 산에 가자. 그리고, 가출 건에 관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라." 했다.
엄마는 자기 자식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는게 내 주장이었고,
그래서, 내가 그 아이의 엄마가 되고, 친구는 내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서 같이 키워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뛰쳐 나가고 싶어 하는 녀석에게는 더 넓은 울타리를 쳐야지, 좁은데 가두려 해서는
늘 '선'밖의 아이로 만들고야 말거라는 내 말에 친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요일 아침, 일곱시 내게 전화 한 건 역시 그 가출소녀였다.
"이모, 빨리 가요."
친구와 나 , 일곱명의 꼬마들의 무게가 실린 차는
이른 일요일의 흐린 아침 속으로 들어간다.
차 안에서 도서관에서 복사해온 자료를 아이들에게 읽으라 했더니, 웅변 잘하는 친구의
큰 딸이 큰소리로 읽었다.
지난 주 송악산에 이어, 이번 우리가 가는 산은 단산, 추사 김정희가 유배와 살았던 곳의 뒷산으로, '세한도'를 그린 곳이다.
'바구미(박쥐의 제주 사투리)산'이었는데,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바구니'로 오인해 '바구니 단'자를 써서 '단산'이 되버린 산,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날개를 펴고 있는 거대한 박쥐의 날개 밑으로 들어섰다.
축축한 솔내음이 난다.
아이들의 작은 발이 우리를 앞지르며, 달려간다.
가파라지는 경사에 돌아 보는 아이들 앞에 어린 소나무들이 아이들처럼 올망졸망
자라고 있다.
'이건 환이' 이건 나'하면서,
아이들은 벌써 자기 나무들을 찾으며 오르고 있다.
숲에서도 아이들은 용케도 길과 길 아닌 곳을 가려내며 걷는다.
숲에서 길을 찾아가듯, 자신의 길을 아이들은 찾아 갈 것이다.
소나무 숲 끝에 나타난 암벽앞에서 아이들은 돌아본다.
이게 엄마의 몫이다.
" 손에 힘 꽉 주고,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 발을 딛고, 중심을 거기다 실어..옳지."
아이들을 낑낑 거리며 올라 내게 손을 뻗는다.
내게 잡힌 아이의 손이 떨리고 있다.
먼저 올라간 녀석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여섯살짜리 친구의 아들을 끝으로 건네주고, 올라보니..
숨이 막힌다.
산에 올라 보니, 세상 복잡함이 다 사소하다.
친구가 빵과 우유 커피까지, 준비했다.
우리는 떨며 올라온 바위에 걸터 앉아, 멀리 보이는 바다를 먹고, 그 위에 뜬 형제섬도 먹고,
산 아래 마을도 뜯어 먹는다.
혹시 만날지 모르는 풀꽃들의 이름을 찾아 볼려고, 준비한 책
'쉽게 찾는 우리꽃'을 펴고, 아이들은 좀 전에 본 꽃들의 이름을 찾아 내고 있다.
'등대풀' '산자고' 아이들이 풀꽃의 이름을 읊어 댄다.
"가는 길에 다시 만나면 이름을 불러줘."
이름을 불러 줘야 꽃이 된다고 김춘수 시인이 그랬나.
여덟시 오십분.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신데렐라처럼 유리 구두를 벗어야 할 시간이다.
다시 암벽을 기어 내려갈 생각에 아득하다.
그러나, 아이들은 한결 용감해져서, 오히려 오를 때보다 의연하다.
넌 할수 있어하며 아이들을 다독거리던 친구가 마지막 녀석을 내려 주자,
나를 보며 한 숨을 내쉰다.
안전주의자인 친구가 얼마나 초조했을지 짐작이 간다.
"등대풀" "산자고" 하며 아이들이 손을 잡고 풀꽃의 이름을 외치며 앞서 간다.
"얘들아, 자기 소나무한테도 인사 해야지."
"나무야 잘 자라라. 나도 잘 자랄께."
저 아이들도 나무처럼 자라고, 아기 소나무도 아이들 처럼 자랄 것이다.
일곱살짜리 내 아들이
"엄마, 내 나무에 물 주러 와야 하는데 어쩌지?"하며 걱정을 한다.
"하늘이 물을 주지, 비"
그제서야 안심 된 아들도 뛰어 간다.
어두운 숲 끝에 밝은 하늘이 나타난다.
차 옆에 있는
'샘이물'이라는 물에서 세수를 하자 했더니,
"엄마, 물이 조개 미역국 색깔이야."한다.
아쉬운데로 손만 씻고 돌아 선다.
아니, 손만 씻은 건 아니다.
마음도 손끝에 적셔 씻어냈다.
물은 조개 미역국 색깔이여도, 산의 기운을 담고 있다.
소란한 아이들 소리에 잠이 깼던 야행성박쥐는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고,
꼬마 등산가들은 목소리가 커져있다.
일요일, 친구는 밭에서 하루 종일 일했고,
나는 신데렐라니까 아홉시 반부터 부엌데기 주방 아줌마로 돌아가 밤늦도록 일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도 유리구두가 없는 것은 확실한데,
두시간의 마법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산이 보인다.
아이들도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