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따사로운 햇살이 베란다에 내어 놓은 초록빛 잎사귀에 윤기를 더하는
그런 아침이다.
잘 떠지지 않는 무거운 눈꺼풀을 따뜻한 물에 맡기고
새로운 마음을 불러 들이기라도 하듯 깨끗이 씻는 일로
언제나 그랬듯이 내게 주어진 소중한 하루를 받아 든다.
화장대에 앉아 예쁘지는 않지만, 화사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나를 만나는 시간 ...
분주한 손놀림 때문에 어느날엔 화장이 영 엉성하게 되는 날도 많지만,
그래도 그 시간만큼은 자신감을 갖고 나를 대할 수 있어 더 없이 좋은 시간이다.
부스스한 나를 벗고, 부드럽고 윤기나는 웨이브를 되살리기 위하여
약간의 왁스 바르는 일을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깨끗한 피부표현을 하고, 화사한 볼화장을 바르고 나서
오늘은 분홍빛 립스틱으로 아침화장을 마무리 한다.
어제 저녁 준비해 둔 반찬과 국, 새로 지은 밥으로 차려낸 식탁에서
아이들과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아침밥을 먹고, 눈깜짝할 사이 아침 설거지를 마치면
종종걸음으로 거울 앞에 선다.
오늘은 뭘 입을까?
굳이 멋쟁이도 아니면서 마땅히 코디가 잘 되지 않는 날에는
괜히 애꿎은 시간만 보내는 날도 꽤나 된다.
바지를 즐겨 입는 나는 모처럼 스커트라도 차려 입으면 왜 그리 준비할 게 많아 보이는지
하다 못해 스타킹색깔이 조금이라도 안 어울린다 싶으면 왜 그리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인지
결국은 다시 바지차림으로 출근하는 날도 허다하다.
남편은 가끔씩 그런말을 한다.
"여자들은 참 피곤한 존재야 ..."
아침 도로 상황은 분명 미어 터지고 있을 게 뻔한데도
시계를 연신 쳐다 봐 가며 뭔가 제대로 잘 갖추어지지 않는 옷차림 때문에
시간을 소요하는 나를 어쩌지 못하며 마음 한구석에서는 나도 어쩔수 없는 여자인가봐 ...
나름대로의 합리화를 하는 때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체형에 맞는 옷이 분명 있는 것 같다.
나의 경우는 다리가 긴편이라 바지 차림이 잘 어울리는 편인데
사무실에 출근하는 여자가 허구헌날 바지차림으로 다닌다는 것도 좀 무신경해 보여서
가끔씩은 여성스런 스커트 차림을 하기도 한다.
일터에서 여성성을 강조할 필요는 굳이 없겠지만, 사람들에게 밝은 인상을 줄 수 있고,
더불어 화사한 기운이 전이될 수 있다면 굳이 여자들이 갖고 있는 특성을 부인하고 싶진 않다.
늘 그날이 그날같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머리스타일이나, 옷차림, 또는 화장에 약간의 변화를 주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여자로 태어나 누리는 특별한 혜택은 아닐까 싶다.
오늘은 체리핑크색 스웨터에 연회색체크무늬 바지를 입고는 연노랑 버버리를 걸쳐 입으니
그런대로 봄 분위기가 난다.
은은한 꽃향기가 나는 향수 두어 방울을 버버리 깃에 살짝 뿌려 주니
한결 화사해진 느낌이다.
누군가 보아 주는 이 없다 하여도 스스로 만족감을 가질 수 있고,
자신감 있게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면 자신의 능력이 허락되는 범위내에서 약간의 사치는
오히려 기분전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가끔씩 들여다 보는 거울속의 자신이 낯설어 보여서 서글픈 날에는
자신을 꾸며 보는 일에 조금만 더 부지런을 떨어 보면 어떨까?
한결 얇아진 옷차림을 하고 나온 출근길이 오늘은 무척이나 상쾌하다.
아이들 등교길을 꼼꼼히 챙겨줄 수 있고,
운동가방 챙겨 이른 아침 스포츠클럽을 찾는 이들이 가끔씩 부럽긴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정신없이 아침을 시작하고 있는 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알기에
오늘도 나는 나의 일터를 사랑하기로 마음 먹어 본다.
매일매일 마주하는 얼굴들이지만,
오늘은 다정한 말 한마디라도 먼저 건넬줄 아는 따스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고 싶다.
오늘은
평소 내가 좋아하는 김범수의 노래를 틀고 싶은 아침이다.
호소력 있는 그의 목소리가
출근길 복잡한 도로에서 조차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때로는 가슴 아프게,
때로는 가슴 벅차게,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있는 지금의 나날들이
그래서 나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