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보지 못한 때아닌 눈이 많이도 내려서,
해가 졌는데도 밖이 환하다.
교통이 엉망이던 말던 눈이 오니 모두들 좋다고 아줌마 친구들이
보내 온 메일이 북적인다.
드라이브를 하자느니, 만나서 중국대사관 뜰이 보이는 큰창이 있는
명동의 찻집에 가자느니....마음은 아직도 사춘기소녀들이다.
그냥 집에 있겠다고 말했다.
차려입고 나가는게 조금은 귀찮게 느껴져서다.
베란다 창틀에 제법 눈이 쌓여 있다. 곧 녹아 버리겠지만....,
요즘은 가족이 모두 늦게 귀가를 하는통에 강아지랑 둘이서만 종일
자고 먹고, 책읽기 알바하고, 집안일 하다가, 컴질 하다가, 전화질하고
그러다가, 생각나면 밥먹고,.....딱 팔자가 늘어진 여자다.
오늘저녁은 아침에 큰딸에게 해준 보리밥이 남아 있어서 대접에 퍼서는
내가 자랑하는 멀리보이는눈쌓인 산을, 주방에 서서 바라보며, 고추장에
비벼먹었다.
난 어렸을때 편식이 심해서 곧잘 밥을 고추장에 비벼먹길 잘 했는데,
새삼 음식 타박이 심하던 그때가 생각나서, 밥을 입에 넣으며 콧등이
찡해졌다.난 지금 중년의 빛바랜 여인이 되어 있는데,
내가 하는대로 어리광을 오냐오냐 받아주던 엄마가
갑자기 그리워짐은......
그냥 지금, 조금은 내가 외로운가보다.
맛있는것 없다고 투정하면,
엄마가 노릇하게 구워서 밥에 얹어주던 황석어도 생각나고, 생선밑에 깔고 뭉근하게 졸인 무졸임도 맛있었다.
생태국도 맛이 있었고, 톡쏘는 맛이 나던 동치미도 생각이 난다.
어리광쟁이 막내가 이젠 엄마나이가 되어 사춘기가 시작될때 이별을
한 어머니를 기억하는저녁... 하늘 나라에서 그분은 날 보고 있을까?
그분에게 이런저런 투정을 부리고 싶은 날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딸아이를 시집을 보내야 한다고 하면 조근조근
잘도 알려 주시련만.....
어머니는 고향같다.
힘이 들때는 생각나고, 안기고 싶고,
어떤 얘기를 모두 해도, 다 들어주고 토닥여 줄테니까....
난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 일까?
유아적이고, 이기적이고, 갈아 앉아 있는.....
집에 오면 늘 그곳에 있는 붙박이장과 같은건 아닐까?
참 바보같은여자다.
단순하고 여린 성격이라선지
작은 걱정거리가 있어도 털어내질 못하고 가슴앓이가 심하다.
좀 밝은 생각을 갖기위해 TV대신 음악을 크게 틀고 심호흡을 해본다.
좀기분이 나아지는듯 하다.
가족들이 집에 오면 엄마의 밝은 모습을 보여 주어야지....
모두 하루의 피로를 잊고 편안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