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꾸, 메리, 해피, 미니,
뭘까요?
눈치 빠른 분은 이미 씨익 웃고 있겠지요?
개 이름들입니다.
오늘은 개 이야기를 하렵니다.
우리 고향 가는 길목 신생마을 입구에는 충견을 기리는 동상이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영리하고 충성스런 개가 주인공인 경우가 더러 있지요.
사람보다 멋진 개들 말입니다.
일본 영화 중에 <하치 이야기>라고 있습니다.
자신을 아끼는 주인을 위해 주인을 마중하던 역에서 얼어 죽은 충견입니다.
아마 보신 분도 있겠지만, 전 이 영화를 보면서
‘참 사람보다 나은 개도 있구나, 개보다 못한 인간이 참 많은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오늘은 저와 인연을 맺은 개들에 대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아직도 우리 친정집에는 개를 기르고 있습니다.
애완견이 아니라 집 지키고, 음식 찌꺼기를 처리해주고,
가끔 주인에게 애교도 떠는 그런 개 말이죠.
코흘리개 적에 기른 개는 <도꾸>였습니다.
왜 도꾸인 지도 몰랐어요. 그냥 ‘도꾸, 도꾸’ 불렀지요.
개 이름마저 작명소에 가서 짓는 요즘 세상 사람들은 개 이름이 그게 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사람 이름마저 일식, 이식, 삼식이, 갑순, 을순, 병순 식으로 불렸으니 그까짓 개 이름쯤이야 대수겠습니까?
중학교 입학 할 즈음 영어를 배우면서 도꾸는 DOG의 일본식 발음이란 걸 알았지요.
개에게 ‘개야 ’하고 오랫동안 불렀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꾸는 우리 식구가 마실을 가도 졸랑졸랑 꼬리를 흔들며 따라 다니던 회색빛 털을 가진 개였습니다.
근데 이 놈의 최후는 아주 처참했지요.
아궁이 문을 닫지 않은 어느 추운 겨울날, 바깥 날씨가 하도 추웠는지,
아님 죽으려고 환장했는지, 이 놈이 아궁이 속으로 밤새 파고들어 갔나 봅니다.
따뜻하니까요.
그런 줄도 모르고 여명을 헤치고 일어나신 어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러는 사이 도꾸는 연기에 질식되어 서서히 죽었나 봅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린 짝을 찾아 바람이 나서 어디 나간 줄 알았어요.
‘괘씸한 놈 같으니’ 하면서 속으로 욕도 한 것 같습니다.
근데 한 일주일 지나서 어머니가 고무래로 아궁이 재를 치우다가 이 놈의 사체를 발견했습니다. 어찌나 가슴이 아프든지 한 동안 개를 키울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 다음에 기른 개가 메리였습니다. 더러 쫑으로도 불렀지요.
‘메리, 메리, 쫑쫑 ’
메리도 참 의젓하고, 멋진 개였습니다.
이 개 역시 최후는 안타까웠습니다.
당시 가을 추수가 끝난 10월 말쯤이면 전국적으로 쥐잡기 행사를 했습니다.
집집마다 개나 고양이를 묶어 두어 쥐약을 먹지 않도록 주의를 주곤 했습니다.
별 생각없이 며칠 묶어 두었다가 풀어주었는데 하루는 남의 집에서 쥐약으로 버무린 음식물을 뒤늦게 먹었나 봅니다.
메리는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신음을 하다가 죽어갔습니다.
메리가 죽어 가는 모습을 발만 구르며 지켜볼 뿐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젠 해피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해피는 우리 시댁 개 이름입니다.
제가 시집와서 몇 마리의 개가 바뀌었는데도 흰둥이건, 검둥이건, 누렁이건 다 이름이 해피였습니다.
우리 시댁 식구들 말로는 자기네 집에 들어오는 개들은 그렇게 영리할 수 없다고 자랑을 합니다. 우리 애들도 해피를 무척 좋아했지요. 그러나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 놈의 해피들은 하나같이 꼭 벗어 놓은 신발들을 잘근잘근 씹어서 엉망으로 만들거나 감히 주인어른의 신발을 자기 배 밑에 깔고 앉아 놀길 잘 했답니다.
저는 시어머니께 불만이 있어도 말 못할 땐 아무도 없을 때 해피에게 분풀이합니다.
"이 놈의 개XX, 저리 안 가." 하면서 옆구리를 발로 뻥 차지요. 그
러면 깽깽거리며 구석에 가서 조용히 해바라기 하면서 저의 눈치를 본답니다.
마지막으로 미니입니다.
미니는 제 친구네 집 개 이름입니다.
아닙니다. 그 집 딸입니다.
제 친구는 그 놈의 개새끼(오해 마세요. 욕이 아니라 어린 개란 뜻으로 부른 것입니다.), 미니를 부를 때
"미니야, 엄마 여기 있다. 이리 온." 하면서 부르거든요.
45만원이나 주고 애완견 샵에서 샀답니다.
미니를 키우기 전엔 친구네 아들이 주워 온 도둑고양이 새끼를 키웠답니다.
그 땐 고양이 새끼 어루만지며 엄마 타령하더니 어느 날 개를 사고는 고양이는 어디 농가에다 맡겼답니다. 개와 고양이가 앙숙이라더니,
이 집 개와 고양이도 지네 엄마만 없으면 싸운답니다.
아니, 일방적으로 개새끼가 맞는답니다. 그래서 친구가 농가에 고양이를 보냈답니다.
고양이를 보내고 며칠을 질질 짤며 ' 뭉치야, 뭉치야' 하며 잊지 못했답니다.
어느 할머니가 그랬다고 하던가요. 기르던 애완견이 죽자 온 식구가 몇 날 며칠을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는“ 아이고, 부러바라. 내 죽어도 저래 서럽게 울랑강.” 했다던가요.
요새 제 친구는 미니만 안고 다니며 자랑 자랑입니다.
심지어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나 시내 외출을 할 때도 안고 다닙니다.
혼자 두면 불쌍해서 데리고 다닌다나요.
제 막내딸은 미니가 좋아 어쩔 줄 몰라 하고요.
내내 미니를 조몰락거리며 놀았답니다.
급기야 미니 엄마가
"미니 몸살 난다. 가만히 보기만 해. 알았지." 하고 신신당부할 정도였으니까요.
미니가 가고 나서 온 집안을 싹싹 닦았습니다.
아직 어린 놈이라 오줌을 여기 찔끔 저기 찔끔 싸댔습니다.
나중에 가고 나니 책상 구석에 똥까지 한 무데기 선물하고 갔더군요.
우리 집 막내딸은 애견 센터 근처를 그냥 지나치질 못합니다.
지나가다가도 꼭 한 번씩 들러서 자기가 먹던 과자를 유리창 밖에서 한 입 베어 먹게 하는 시늉을 하거나 예쁜 강아지 한 번 쳐다보고 감탄사를 연발해야 자리를 뜬답니다.
하는 수 없이 진짜 개는 못 사주고 차이나제 개 인형 하나 사줬습니다.
그 개 이름이 '미니'입니다.
"얘, 미니는 아줌마네 개 이름이잖아?"
하니, 딸이
"왜, 예쁘잖아, 나도 미니라 부를거야."
지금 우리 집 미니는 하도 만져서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었습니다.
식사시간에도 막내딸이 미니의 코를 밥그릇에 대고 밥 멕이는 시늉을 한답니다.
이러다가 진짜 개를 사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조만간 저도 개 엄마가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