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일곱 늦은 나이의 남동생이 신학대학원을 졸업 합니다.
8살에 초등학교 입학해서 시작했던 그 공부가 아직 끝나지 않았었습니다.
배움에 어찌 기간이 있겠습니까?마는 동생은 남들 공부 다 끝나 있을 늦은 나이인 지금껏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던 그해 동생은 성직자의 길을 가겠노라 선언을 했습니다. 너를 자식이라 하지 않겠노라는 부모님의 노여움에도 동생이라 하지 않겠다는 형들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앗습니다. 냉정히 제 앞길만 보며 집을 떠났던 동생입니다.
그로부터오랜시간이 흘렀습니다.
식구들중 누구도 교회를 다니는 이 없는 가운데서 시작한 신학공부였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친정 어머니만이 조금씩 도움을 주시는 듯 하셨습니다. 자신이 선택해서 인지 단 한번도 어렵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해 여름 나는 동생이 지갑여는걸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텅 비어 있는 빈 지갑이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힘들면 돌아오렴?' 제발 돌아와 주길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릅니다. 자신이 가려 하는 성직자의 길이 누나인 나 때문이었다고 했을때 저는 절망했습니다. 누나가 데려갔던 어린시절의 교회와의 인연이 오늘 자신이 가려하는 성직자의 길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누구나 교회에서 주는 몇개의 먹거리에 학용품에 마음이 동해서 교회를 곧잘 가던 그런 나이였고 시절이였습니다. 저는 기억하지 목하는데 동생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누나는 자기를 응원해달라고 말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 후로 동생은 자신의 그 길을 향해 힘겹게 걸어왔습니다. 이제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동생이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바랐습니다. 지긋지긋하게 가난했던 생활고에서 해방되기를 말입니다. 그런데 아니라고 합니다. 다시 외국으로 나가는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그 놈의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고 합니다. 세상 속물인 제가 감히 막을 수도 없고 막아도 듣지 않겠지만 저는 동생을 말리고 싶습니다. 이제 좀 편하게 지금의 생활에 안주하라고만 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런 동생이 자랑스럽기도하지만 야속하기도 합니다. 동생에게 시키려했던 의학 공부를 해서 부모님과 행복하기를 얼마나 소망해온 이 누나의 마음을 동생은 이해할까요?.
'사람의 육신을 고치는 의사가 아닌 영혼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겠다' 하던 그 약속을 지켜준 동생입니다.
이제는 동생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겠습니다. 동생의 행복만 빌어줄 것입니다.
목사님!
하고 부르면 동생은 지난 세월의 시린 기억들을 미소로 받아 줄것임을 저는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합니다! .
내동생 정연우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