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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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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이야기


BY 얼그레이 2004-02-18

얼마전부터 오른쪽 아래첫번째 어금니와 그 옆에 보철을 한 어금니사이에 음식찌꺼기가 자꾸 껴고 혀끝으로 그 사이를 훑어보니 뭔가 깍인듯 까치르르한게 문득 벌레가 내치아를 파먹고 있다는 생각에 작은손거울을 꺼내 입안을 위아래로 치켜들며 낮추며 찬찬히 살펴보니 예상대로 벌레가 이제 막 내 이를 갈아먹는 작업에 돌입한것 같다..
'에이씨, 치과 정말 가기싫은데...돈도 돈이지만..다른 병원에 가는건 다 괜찮은데.. 치과엔 정말 가기싫어 죽겄다...마치 고문실에 있는것 같아서'
몇일전부터 마치 어린아이가 병원엘 가기싫어서 투정부리듯 말하는 날 보더니,
'가기싫으면 안 가면 되지'라며 남편은 정말 자기다운 말을 건넸다..
근데 치아라는게 어디 그런가! 치아뿐만아니라 다른 병도 마찬가지이지만 초기에 적절히 잘 진압하면 크게 번져서 나중에 크게 낭패를 보는일이 없어야 하는 말이기에..또 거기다가 며칠전에 언니가 하마터면 틀니를 해넣어야 될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있었다고 나에게 전화상으로 털어놓기도 했다..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 또한 섬뜩했었다..
특히 치아는 일단 문제가 생기면 조기진압을 빨리할수록 비용도 줄어들거니와 아까운
내 치아가 의사양반에 의해 더 많이 깍이는 아쉬움을 덜수 있기에...
또 여자들은 출산후에 잇몸이나 치아가 가뜩이나 약해진데다가 육아나 여러가지일로 바빠서
틈을 낼수 없기에 치아에 이상이 생겨도 그냥 참거나 방치해버린다...

내가 치아에 관해서 무엇보다 억울해하는건..난 적어도 하루에 두번이상은 꼭 양치질을 한다..자기전엔 아무리 피곤해도 가급적이면 할려고 노력한다..가끔씩 빼먹는 날도 더러 있지만..출산하고나서 잇몸이 나빠져서 잇몸치료의 기본이라고 할수 있는 스켈링도 정기적으로 해준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남편은 아침에 출근준비할때 한번 양치하는게 고작..자기전엔 양치하는
모습은 눈씻고 찾아볼수 없고 스켈링은 커녕 태어나서 치과엘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울남편이다..그래도 그 정도록 남편의 치아가 건재한걸 보면 그것도 타고나는것 같기도하다..
시댁에 한번씩 머물때에 시부모며 시누며 잠자기전에 밤참을 실컷 먹고나서 누구하나 양치하는걸 본적조차 없는데 그네들의 입속에 나처럼 번쩍번쩍이는 보철이나 뗌빵이 하나도 없는거 보면 정말 치아는 선천적인 영향이 큰것같기도하다...
그것도 그려하거니와 식사습관도 문제인게...먹는걸 워낙 좋아해서 늘 입에 군것질거리를 달고살았고, 남편처럼 소나기성으로 한꺼번에 음식을 먹기보단 체질상 어쩔수없이 가랑비처럼 조금씩 자주 먹었기에 치아사이에 음식찌꺼기가 양치질하기바쁘게 쉴틈없이 껴있었던 원인도 한몫을 했던것 같다..
낼낼 미루다 미루다가 에라! 하기싫은 일은 빨리 해치우는게 좋을것 같다며 오늘에서야 비로소 병원가는길을 나섰다..단골병원으로 갈까 아님 다른병원을 갈까 궁리끝에 몇달전에 스켈링하러가던차에 안내데스크를 보던 이쁘고 싹싹한 간호원언니가 칭얼대던 아들놈을 싹 안아주면서 자기일을 보던 그 친절한 모습이 문득 떠올라서...'뭐, 그 병원, 다른 병원보다 좀 비싸더라도 친절하니깐 가자'라고 궁시렁거리며 그 단골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유난히 걷기싫어하는 아들놈을 안고 이십분을 걸어서 도착해 병원문을 열었는데...어랴! 그 싹싹하고 이쁜 간호원언니는 없고, 뭐에 그렇게 불만이 많은지 입만 불쑥 나온 인상이 날씨에 비교하면 아주 흐린 간호원이 대뜸 '어디아프세요? '하며 무뚝뚝하게 한마디 던진다..
간호원에게 아픈곳을 얘기해주는 동안에 환경에 대해서 유난히 낯을 가리는 아들놈은 칭얼거렸고, 녀석을 안고 있던 팔이 넘 아파서 잠시 밑에 내려놓았더니 기어코 엉엉 울음을 터트리자 간호원은 '아이 어떻게 좀 해봐요!'라고 매몰차게 짜증섞인 말투로 말하는것이다..
그래도 한 성격한다는 난 대놓고 말은 못하고 '어휴~~ 사람 생긴것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말 안 하고 싶은데..저 여자 정말 생긴대로 노네..안 생겼으면 맘이라도 고와야 그나마 이뻐보이지...어휴 ~ 속넓은 내가 참자'라며 속으로 있는 흉 없는 흉 다 보았다..
어른이든 아이든 얼굴이 못나고 잘남을 떠나서 맘이 고우면 그 생김새는 몇백배 더 이뻐보이는게 사람심리가 아닌가싶다..하기사 저번에 안과에 갔을때 거기 안내데스크를 보던 그 얼굴 이쁜 간호원도 맘씨가 고약하니 그 이쁨도 온데간데없이 오히려 마녀같이 보이더구만..
신상파악을 알리는 간단한 질문이 끝나자 두 모자는 휴게실쇼파에 나란히 앉았고 치료받을동안 이녀석을 어떻게 할지 궁리하느라고 머릿속은 온통 복잡했다...'저번처럼 베이비시터에 맡길걸 그랬나..아님 좀 미안하더라도 이웃집 할머니에게 맡길걸 그랬나..이 얼굴 잔뜩 흐린 간호원은 이미 물건너간것 같고 아들놈을 진료실안에 데리고 갈수도 없고 혼자 놔두면 낯설은 환경땜에 울것같구'...속으로 고민고민하는 가운데 일단은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것 같아서 진료실안에서 내 이름이 호명될때까지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며 신문이며 펼쳐놓고 함께 읽으며 일단 녀석을 내무릎에서 쇼파로 옮겨놓는일에 성공하자 아이는 이젠 제법 낯설음을 떨어버렸는지 안정감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드디어 진료실안에서 간호원이 내이름을 호명하자,  진료실안에 있던 간호원이 아이땜이 난감해 하는 나를 알아차린 모양인지 안내데스크일을 보던 얼굴 잔뜩 흐린 간호원에게 잠깐 봐달라고 하니 '걔는 울어서 안돼'하며 딱 잘라 말하며 외면하는것이었다..
난 또 속으로'어휴~ 저여자 진짜 갈수록 태산이네..그래서 여자는 애를 낳고 길러봐야돼..애를 병원에 데리고 온 내가 잘못이지'라며 궁시렁거렸다..
환경에만 낯설어할뿐이지, 주위에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으면 맘을 놓기도 하는 녀석을 어디 한번 믿어보자하며 녀석의 눈치를 실실 보면서 까치발을 해가며 슬금슬금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물론 주위엔 어떤 두 모녀가 있었는데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책을 보느라고 알고도 내 고민따위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녀석이 행여나 엉엉 울며 날 찾지나 않을까 했는데..진료실 의자에 눕자마자 몇초안되어 아들녀석의 까르르 혼자 웃는 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집에서 혼자서 책보며 중얼중얼거리는 특유의 아들 말소리도 이내 들리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그래도 맘한켠엔 맘을 영 놓치 못한탓에 치료를 받는 중에도 이가 시린아픔조차도 느끼지 못할정도록 내 귀는 아들의 말소리에만 쫑긋거렸다..그래도 얼굴 잔뜩 흐린 간호원도 인간인데 아이에게 '깡꿍'이라는 한마디 말이라도 건넬거라고 잔뜩 기대했었는데 내가 넘 큰걸 기대했었는지...여전히 첨부터 끝까지 아들의 쫑알쫑알거리는 말소리만 들려왔다..그래 나는 내 아들이기에 녀석이 무척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다른사람들의 눈에 시시한 존재인데 뭐...하며 이렇게 스스로 위로했다..
고문과 영락없는 진료를 다 끝내고 휴게실로 돌아와보니 잘 차려 입은 한 중년아줌마는 잡지책을 읽고 있고, 얼굴 잔뜩 흐린 간호원은 앉아서 자기일에 여전히 열중하고 아들놈은 첨에 앉은 그대로 쇼파에서 책을 보며 궁시렁궁시렁거리며 혼자 잘 놀고있었다..진료실에서 나오는 나를 보자마자 반가운지 씨~익 쪼개며 나를 맞이하였다..
'야! 이눔아 너 넘 시끄러워서 의사선생님이 치료를 제대로 못하시잖아'라며 늘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로 수다를 연신 떠는 녀석땜에 주위사람들의 귀가 피곤할것 같아서 겉으론 이렇게 핀잔을 줬지만...사실 속으론 오늘처럼 녀석이 이렇게 어른스럽고 의젓해보이기도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보통때보다 더 많이 안아주고 입맞춤도 더 진하게 해주었다...
이번주 목요일에 예약날짜를 정하고 병원문을 나오면서 미운놈 떡 하나 더 주자는 맘에서 얼굴 잔뜩 흐린 간호원에게 목청껏 큰소리로 '안녕히 계세요' 하며 녀석을 안고 병원밖으로 나왔다..
이제부터 그 간호원의 별명을 얼굴 잔뜩 흐린 간호원이라고 명명했다...
아들도 동의한듯 끄덕끄덕거렸다..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녀석이 좋아하는 고구마파이를 구워줄려고 마트에 들려서 와인빛이 진하게 감도는 달콤해보이는 고구마한봉지를 샀다...

 

 

2004년 2월 16일

치과엘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