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부터 온다는 택배직원이 짐을 수거해간후에야 넷째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야! 오늘 택배로 음식 보냈거든...낼 도착할거야... 별일없지?'
'응, 잘 먹을께...근데, 휴우...'
깊이 한숨을 푹 쉬는 언니의 흐려지는 말끝이 어쩐지 안좋은 일이 터질것처럼 불안감마저 막 들기시작하자..
언니가 이내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기 시작했다..
'너 들었니? 큰언니가 학교선생이랑 바람나서 이혼당했다식으로 촌에 소문이 다 났대...
사실은 예전부터 다 알고 있었대...동네사람자기네들끼리 쉬쉬하면서 아버지엄마에겐 모른척 했나봐'
언니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머리뒤통수를 얻어맞은것같이 멍해졌다...
언니와의 전화통화조차도 언제 끊었는지조차도 기억나지 않을정도록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사람들로 오고가는 바깥구경조차 하기싫을때 쳐놓은 베란다창의 엷은초록의 버티칼만 멍청히 바라보고 있을뿐...
그리곤 하루 온종일 넋이 나간사람처럼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옆에서 투정부리는 아이의 징징거림도 배고픔도 아무것도 인식되지 않는 하루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바로 내 가족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한건데 그냥 사람이라는 존재자체도 역겹고 보기조차도 싫은 하루였다..
큰언니가 온세상사람들로부터 화냥년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아무렴 어떻고...
언니의 궁극적인 이혼사유와 자세한 내막은 쏙 빠지고 언니의 치부만 고스란히 소문으로 떠도는것두 아무렇지도 않다...
정작 내가슴을 후벼파는건 자식교육잘못시켰다고 울부모님등뒤에서 손가락질하면서 속닥거렸을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와 비웃음이 아련거려서였다...
사람이 너무나도 혐오스럽고 보기싫어지는 하루였다...세상과 단절할수 있다면 단절하고 싶은 하루였다...
내 어린시절 내이웃아줌마아저씨였던 고향동네사람들이 죄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송곳니에 음흉한 침을 질질 흘리며 남의 집 흉을 기다렸다는듯이 서슴치않고 갈기갈기 난도질하는 이름모를 괴물들처럼 보인다...
자신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인해 일이 그렇게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동네사람들 이목에 신경쓰지말라고 너무도 당당하게 엄마에게 큰소리치는 큰언니도 끊을수 없는 혈연이지만 수근덕거리는 그 사람들보다 더 참을수 없는 존재이다..
온통 내 머리를 떠나지않고 감도는건 식사를 거르고 자식땜에 하염없이 울면서 두문불출하고 계실 고향의 부모님뿐...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세상엔 비밀이 없다더니...
부모님이 사는 동네에서 멀지않은 동네를 고향으로 둔 서울서 언니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선생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말이 그 촌동네까지 미치는건 시간문제라는걸 부모님께선 전혀 예상치도 못하셨읕터...
처녀적때부터 그 예민한 성격땜에 신경성 위염을 평생 달고 다니시던 엄마는...작년 여름엔 위에 혹이 생겨 다행히 양성이라서 한시름 놓았지만..그걸 마취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눈물을 짜내며 떼어냈는데...
거기다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 남동생이 속을 썩이는 바람에 지칠대로 지친 엄마의 속은 또 이번일로 시커멓게 타들어가는걸 보면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잘날 없다고는 하지만...자식이 도대체 뭔지...
큰언니의 몇년전 이혼은 울집에서 첫선례가 아니었기에 언니의 이혼은 부모자식간의 연을 끊을정도록 부모님을 너무도 힘들게 했다..처자식보단 자기집밖에 모르는 너무도 지나친 효자였던 형부로 인해 두 부부의 결혼생활은 늘 삐걱거렸다....그걸 감내하기엔 언니도 이해타산적인 성격이라 결국엔 그렇게 이혼으로 종지부를 찍었다...가족어느누구도 원하지 않는 결과였었고 또한 누구의 환영도 받지못했다..가족각자가 내 가족의 치부를 그냥 알아서 삼키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결혼하기 몇년전 세째언니가 먼저 그랬었다..어느날 자정이 넘은 시각에 걸려온 전화... 제발 날 살려달라는 외마디의 비명소리를 듣고 곧바로 언니집으로 달려간 엄마는 한 단순한 인간이 저지른 폭력으로 몰골조차 알아볼수 없는 언니를 델고 병원으로 갔었다...나 또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기에 같은인간을 저렇게 비참하게 때릴수 있을까 하는 공포심마저 느껴 살이 부르르 떨리곤 했었다...그런 외도와 폭력에도 꾸역꾸역 살겠다는 언니의 미련함을 질타하면서 언니의 주위사람들은 그녀의 이혼을 종용했었다...물론 언니는 이혼후에 혼자 시린 가슴을 안고 살아야하는 적쟎은 나날도 겪었고 남모르는 눈물을 참 많이도 흘렸지만 지금은 다행히 두살 연하의 좋은 인연을 만나서 자식낳고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하지만 그날이후로 엄마는 한밤중이나 새벽에 걸려오는 장난전화라도 받으면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한다...그때의 악몽이 다시 되살아 나는것같이...
두 언니의 실패아닌 실패로 인해 친정엄마는 내 결혼생활조차도 살얼음판을 걷는것처럼 늘 불안해하셨다..당신이 보기에 또 다른 실패가 재현될까봐 두려웠는지...더군다나 사돈이 같은 동네에 살고 성격 유별난 시어머니를 두어서 자기신념과 고집이 너무도 강한 내가 염려스러웠는지...내가 아이를 낳기전까지만해도 하루가 멀다하고 집으로 전화를 해서는 남편에게나 시댁에 목소리 좀 낮추고 극진하라는 일장연설을 들어야만 했다...
나또한 그런 엄마의 염려스러운 말에 언제나 적절하게 부응하지 못하고 내생각을 적나라하게 말해버리는 불효를 이번설에도 저지르고 말았다...
'이혼이 자랑도 아니지만 무슨 흉도 아니구...왜 그렇게 기죽어 지내야 하는데... 엄마가 울시어머니에게 더 굽실거릴수록 시어머니는 나에게 더 큰소릴친단 말이야....그걸 알기나 해?
제발 당당해지란 말이야....글구 이따위 비싼 고기는 왜 자꾸 갖다주는데...그래봐야 시댁에선 고맙다 말 한마디도 안 하고, 무우쪼가리하나두 안 주는데...'
'같은 마실에 사는 사돈인데...널 봐서 주는거지뭐....딴생각이 있나뭐...니 언니 이혼한것도 어찌보면 니 흉이나 마찬가지다아이가'
머리로는 이런 말을 할수밖에 없는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늘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엄마의 불안하고 답답한 맘을 한층 더 짓누르는 말들뿐이었다...
이렇게 부모속을 살피지않는 말을 내뱉는 나조차도 맘한켠엔 나로인해 친정부모님의 안절부절하실지도 모를 맘을 염두해서 아무렇게나 내뱉는 시어머니의 어이없는 말들도 다 삼키고 걸러들어야만 했다...티비를 보다가 문득 이혼한 어떤 유명연예인을 보고선 '저년도 얼마살다가 이혼했다아이가...뻑하면 이혼이나 했사꼬'하는 말을 내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시어머니의 말들도 이젠 무덤덤하게 일종의 어른답지 못한 철없는 망발로 생각하고 가벼히 잘 삼킨지도 참 오래 되었다.....그건 어디까지나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내 부모님을 위해서 참고싶지 않았지만 참아야만 했던 인고의 시간들이었다...그러던 과정으로인해 난 참 많이 무뎌지고 많이 깍여지고 있었다...
지금껏 큰딸의 이혼만은 어떤집 사위의 옷차림까지도 심지어 씹는것도 마다하지않는 말많은 동네사람들에게 어떻게든 함구해오고 있었는데....같은 동네에 사는 울시댁이 특히 신경쓰여서 행여나 알게될까봐 지금껏 이웃사람들에게 둘러대곤하셨던 모양이다...
이번일로 인해 또 한번 맘의 충격을 받으셨을 부모님....
어려운 살림을 일구려고 지금의 그곳에 터를 잡고 물장사를 시작으로 육남매 대학교육 이제껏 다 시키시고 이십년 넘게 해오던 장사를 그만두고 이젠 한시름놓을까 생각했는데...자식일로 또 맘고생하시는 부모님의 양미간사이의 패인 주름만 깊어가는걸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술이 떡이 되어도 밥은 꼭꼭 챙겨드시는 아버지조차도 식사를 거르셨다고 한다..
자식의 과오로 인해 부모로서 평생 짊어지고가야할 십자가의 무게를 내가 조금이라도 가벼히 해줄 어떤 방도가 없음에 가슴이 미어터질듯이 아프기만 한 하루일뿐...
그리고 퉁퉁부은 두눈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