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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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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


BY 선물 2004-01-30

"민주야, 밥 먹어라."
"재항아, 손 씻어라."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이렇게 다른 이름을 붙여 부를 때가 있다. 민주와 재항이는 바로 내 동생들 이름이다. 이런 실수는 주로 명절이나 집안 행사로 친정에 가서 동생들을 만나고 왔을 때 자주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친정에 가서도 동생들에게 아이들 이름을 붙여 부를 때가 많다. 그저 입에 붙어 익숙해진 이름이라 그런 실수를 하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하게 이름만을 혼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과 동생들을 대하다 보면 그들에게서 받게 되는 어떤 느낌이 서로 흡사하다는 생각을 자주 갖게 된다.

아들은 올해로 열 세 살이 되었다. 키도 크고 체격도 만만치 않아 제법 남자 냄새를 폴폴 풍기고 있다. 그래도 엄마인 내게는 늘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한 지라 버거운 자세로라도 안아 주게 될 때가 많은데 이 아이를 안을 때마다 그 느낌이 예전에 남동생을 안았을 때와 흡사한 것이다. 실제로 나를 잘 따르던 남동생을 중 3이 될 때까지 안아 주었으니 그 감성이 모성과 다를 바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가끔 딸아이를 놀려주고 싶을 때 아이를 바라보는 내 장난기 가득한 두 눈은 예전에 여동생을 짓궂게 놀릴 때의 그 눈빛을 기억하고 있는 듯 꼭 닮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생각해 보면 예전의 나는 언니로, 큰누나로 있던 그 자리에서도 그렇게 모성으로 두 아이를 가슴으로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는 그 모성 닮은 형제애는 가끔 갈 곳을 모른 채 이리 저리 주변에서 서성거리게 된다.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나는 비교적 드물게 친정을 찾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한 때는 내 집이기도 했던 친정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덜 만만해짐을 느끼게 된다. 내 부모님과 내 형제 자매이건만 어느새 부모님께는 며느리나 사위 등 또 다른 자식들이 생겼고 형제자매들에게는 나보다 더 가까운 그들만의 짝이 곁에 앉아 있으니 나도 내 남편 내 자식을 곁에 두고 그만큼의 거리를 갖게 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들은 애써 하나가 되는 일치감을 맛보려고 애쓴다. 주로 나누게 되는 이야기도 함께 살을 비벼대며 지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사 남매가 나란히 엎드려 만화책을 서로 돌려가며 읽었던 기억, 보고 싶은 텔레비전을 부모님이 못 보게 할 때마다 귀염둥이 막내인 남동생을 꾀듯이 시켜서 마침내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내어 우리의 뜻한 바를 이뤄내고 말았던 기억, 청소나 설거지가 하기 싫어 한참을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은 부모님께 혼이 나고 말았던 기억,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우리는 과거에 얼마나 가까운 사람들이었는지를 새삼 서로의 가슴에 확연한 도장으로 새겨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 남매가 세월과 함께 한결 아름답게 포장된 지난날의 근사한 기억들로 즐거워하는 사이, 또 다른 우리의 반쪽들은 지겹도록 반복해서 듣게 되는 추억담에 조금은 지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때, 우리는 미래를 이야기하며 얼마나 즐거워했던가?
사 남매에 각자의 짝을 합하면 모두 여덟이라는 대군(大軍)이 될 터이니 마치 적군을 앞에 두고 천군만마(千軍萬馬) 아군을 얻은 듯 의기양양하리라는 기대감에 정말 멋진 장래를 꿈꾸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단순계산법으로 답이 얻어지는 일이 아님을 의심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때는 큰누나인 나를 엄마보다도 더 따르고 내 품에 안겨 평온함을 찾았던 남동생이었기에 영원한 큰누나 팬으로 남아 있을 줄 알았던 그 동생마저도 자기의 반쪽을 찾더니 언제 누나의 팬이었냐는 듯 내 기대를 저버리고 올케에게로 마음을 다 돌려버리고 말았으니 넷과 넷을 더하는 것이 결코 여덟이라는 답을 가져 올 수 없다는 것을 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옛날, `형제는 수족(手足)과 같고, 부부는 의복과 같다. 즉, 의복이 떨어졌을 때에는 새 것으로 갈아입을 수 있지만, 수족이 잘리면 잇기가 어렵다.'는 장자의 말처럼 부부의 인연을 하찮게 생각하는 것은 요즘 세상에 지나가는 개도 웃을 말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시댁에서는 죽으라고 듣기 싫던 그 말이 친정에서는 갑작스레 떠올라 혼자서 중얼중얼거려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은 역시 턱없는 못된 시누이 심술인가 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케들의 착하고 고운 심성은 나에게 한 번쯤 못된 시누이 행세를 해 볼 기회마저 빼앗아버리고 말았다.

사실 그동안 각자의 생활이 바쁘고, 처해 있는 현실이 여의치 않았던 까닭에 우리는 현실적으로 서로를 접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이라는 한 점을 향해 항상 해바라기 사랑을 보내는 우리들은 언제라도 돈독한 형제애를 과시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 노년이 될수록 부모형제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시어머님도 날이 갈수록 시이모님이나 시외숙부님등 당신의 혈육들에게 더 끈끈한 애정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또한 늙어 노쇠해질수록 형제자매들은 서로를 닮아가고 결국은 한 부모님으로부터 세상에 나온 사람들임을 확연하게 드러내게 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내 친정 아버지의 모습도 점점 큰아버지의 모습을 꼭 닮아간다. 두 분이 함께 서 계시면 누가 보아도 형제임을 단박에 알아 낼만큼 그렇게 꼭 닮아간다. 서로를 바라보면서 새록새록 뜨거운 핏줄임을 가슴으로부터 절감하게 될 일이다.

한 둥지에서 함께 한 시간들은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눈물로 그려지겠지만 그 시간들이 설사 슬픔만이 흠뻑 배인 얼룩진 기억 뿐이라 할지라도 그 시절을 그리움으로 찾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아마 살아온 시간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데 대한 진한 회한만이 절절이 남게 될, 때늦은 시간이 되어 버린 후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연어를 닮아 보인다. 연어는 처절한 싸움을 하면서 끝내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아온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풍매화나 수매화같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튼실한 삶을 살아가게 하려고 바람이나 물에 씨앗을 떠나 보내는 식물들은 차라리 덜 처절해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한 자궁에서 태아기를 보내고 한 배꼽으로 질긴 인연을 드러내고 또 한 젖꼭지를 빨면서 세상과의 만남을 가진 한 핏줄들을 결코 떠나보내지 못한다.

가끔 돈 때문에 서로의 이득을 챙기고자 핏줄의 질긴 연(緣)을 끊고 깊은 원한이라는 감정의 골을 만들어 등돌리고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는 그들도 서로 완전한 화해를 이루기를 원하게 되고 그것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 한이 되어 가슴에 못이 박힌다고 한다.

아이들은 내 품에서 엄마만의 좋은 향을 맡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예전에 내가 엄마에게 했던 말 그대로이다. 우리 사 남매는 늘 엄마의 가슴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향긋한 엄마만의 향을 즐겼었다. 어쩌면 그것이 화장품 향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엄마의 향이 어찌 화장품이라는 화학적 냄새뿐이었으랴. 그 속에 녹아 있는 오묘한 사랑의 기운을 함께 받아먹은 우리는 그래서 서로의 멀어짐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들도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 그들만의 사랑의 보금자리를 꾸미겠지만 항상 한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고 위해주는 그런 우애를 영원히 지니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언제나 한 점인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