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고 나니 우리 앞집은 딸아이가 어릴 적 가입한 합창부 단원이어서 무척 반가웠다.
그 집에 들렸을 땐 오래 전에 만났던 합창부 자모들이 같이서 김장을 하고 있었다.
그이들은 사람은 이렇게 만나지는 법이니까 죄 짓고는 살면 안되겠다며 한마디 씩 건네며 웃었다.
그 날 저녁에 집들이 음식을 했다며 산적을 부쳐서 가져왔다.
우리 남편 소주에 한잔 걸치더니만 누군가에게 전화하며 술 한잔 했더니 기분이 조~옿다고 싱글벙글이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까?
소주 몇 잔 했다고...
어디 나도 한 잔 해볼까?
남편이 먹고 남은 소주를 소주잔에 한 잔 따라서 그 산적과 같이 먹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갑자기 배가 뒤틀려 오고 장이 꼬여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윗배를 잡고 내가 뒹구니 우리 식구들 장난하는 줄 알고 농담을 한다
정말 이대로 죽을 것만 같은데 식구들은 믿지를 않는다.
하기야 내가 음식을 먹고 아파보기는 어릴 적 식중독 겪은 뒤론 처음이니까..
내 자신도 안 믿기는데 누군들 소주 한잔에 싹 달라져 버린 상황이 믿어지기나 할는지...
우리 딸 급기야 119를 불러야겠다고 하는데 남편은 괜찮을 거라며 별 걱정이 없다.
술 한 잔 마시고 그런 거니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 같아서인가 보다.
그런데 난 이렇게 죽게 된다면 어쩌나?
갑자기 나만 위해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부끄러워졌다.
이대로는 죽을 수가 없다. 절대로..
욕심과 허영과 아집으로 가득찬 내가 죽고 난 뒤에 나의 흔적을 치워야하는 자들에게 얼마나 미안할까?
그동안 진정으로 누구에겐가 진정한 사랑을 베풀어 보았는가?
나보다도 내 이웃을 더 사랑해 보았는가?
갑자기 밀려오는 상념들에 자문자답을 하며 우리 남편에게 중얼거리듯이 한 마디 했다.
"나 이대로 죽으면 안돼.. 부끄러워서..."
우리 남편 왜? 무슨 영문인지 몰라 의아한 눈으로 날 쳐다 본다.
아직도 콩깍지가 안 벗겨진 우리 남편은 자기 마눌이 이 세상에서 제일 이쁘고 제일 착한 줄 안다. 메렁이지만.^^
저녁에 먹었던 음식을 다 거꾸로 뒤집어 내어 놓고 나니 속이 좀 후련했다.
딸이 매실 액을 찬물에 타서 가져다 준 것을 마시고 나니 좀 살 것 같다.
매실이 살균효과를 한다더니 정말 효험이 있었나보다.
식구들이 다 같이 먹었는데 왜 나만 그랬을까?
새벽녘까지 간간히 뒤틀려 오는 배를 움켜쥐며 난 그동안 놓아버린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아둥바둥 욕심으로 가득 채운 내 모든 것들이 내 자신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가?
무소유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 가를 짧은 시간에 느껴본 귀중한 체험이었다.
앞으론 정말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가족과 내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