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너무 아프고 처절하리만치 혼자라는 외로움에 견디기 힘들 때
시도 때도 없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울분을 터뜨릴 길이 없어
차를 끌고 이리저리 방황하다 지치면 돌아 와 더 이상 이젠 헤맬 곳도 없어 마땅찮을 때
나도 몰래 기웃거린 곳이 모 채팅 사이트였다.
누군가에게 가슴 속의 응어리 진 그 무언가를 털어 놓고 싶은데
그렇게라도 하면 좀 더 마음이 진정 될 듯 싶은데
그놈의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칠 않아 친구들에게도 말 할 수 없어 끙끙 앓다가
그 비상구를 찾은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처음 들어 가 이리 저리 마우스를 눌러가며 눈이 휘둥그래진 것은
무슨 놈의 방제들이 그리도 현란한 지
도대체 누가 볼까 낯 뜨거워 함부로 들어 갈 엄두조차 나질 않는 것이었다.
그런 데에도 접속자 수는 이십몇 만명에서 삼십몇 만 명으로 계속 늘어만 간다.
이 시각에 컴퓨터 앞에 앉아 미지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털어 놓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단 말인가...
가슴에 구멍이 훵 뚫려버려 그 곳을 땜질해야만 할 사람들이 그다지도 많단말인가...
방제들도 각양각색이다.
가끔 핸드펀에 들어 오는 스팸문자들 비슷한 방제도 많이 눈에 띤다.
'외로운 녀만 들어오세요...'
'오빠...나..지금 외로워요...'
'중년 아줌마와 사귀고 싶어요...'
글로 이 곳에 감히 밝힐 수 없는 이상야릇한 문귀들로 표현 된
그 방의 특색을 나타낸 듯 열쇠 모먕으로 비공개방임을 표시한 곳은
아마도 이미 정해져 있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삼십분이 넘도록 아무 방에도 선뜻 발을 들여 놓지 못하고 헤매다가
갑자기 눈에 들어 오는 방제 하나.
학력에 제한을 두는 방제였다.
설마 그 방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들어오진 않을 거 같아 조심스레 클릭했다.
채팅이 처음이라고 밝히니 낯 선 여인네가 반긴다.
누군가에게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은 마음에 들어와 봤다고 이야길 시작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소위 말하는 '상담자'라는 사람이 상담할 곳이 없어 이 곳엘 들렀노라고
말문을 트니 그녀도 자신의 아픈 속내를 샅샅이 내 놓는다.
언니...언니는 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네요...로 시작된 그녀의 하소연은
나와는 정말 비교도 안될 정도로 더 가슴 절절한 사연이었다.
우리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누가 자판 두드리는 속도가 빠른지 시합이라도 하는 것처럼
주저리주저리 쉴 새없이 이어져만 갔다.
그 때엔 정말 초보자라서 그 방에 누군가가 또 있다는 사실은 생각조차 못했다.
내 이야길 풀어 내느라
그녀의 이야길 들어주느라 그렇게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는데
중간에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났다.
방장이란다.
깜짝 놀랐다.
눈에 안 보이니 또 다른 사람이 그걸 모두 듣고 있다는 건 염두에 두지 못한 일이었다.
나름대로 바른생활의 모범적인 삶을 사는 여자라고 자신하며 살아 온 내겐
사이버 세상의 일들은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노골적으로 애인을 구한다는 유부녀와 유부남들.
그들을 누가 그 곳으로 내 몰았을까...
그들을 누가 그토록 외롭게 만들었을까...
'애인'도 단순히 차 마시고 이야기 나누는 그런 애인이 아니란다...
좀 더 밀도 짙게 만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애인사이를 원한다나...
그들은 그걸 '로맨스'라 부른다지만
속칭 남이하면 '불륜'이요, 내가 하면 '사랑'이라는 말이리라.
물론 걔중엔 여자들만의 방도 있고
음악을 들으며 여럿이서 정말 건전한 대화를 나누는 방도 더러는 있었다.
아직 전혀 채팅 문화에 대해 감을 못 잡은 어리버리한 나는
내 직업을 곧이곧대로 밝혔더니 모두들 의아해 한다.
'아니, 교직자도 채팅을 하나요?'
쓴 웃음이 나왔다.
그래...그 위신이란 것 때문에, 체면이란 것 때문에
아파도 아프다 못하고 속 상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위선으로 똘똘 뭉쳐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도 스스로에게 가끔은 환멸을 느끼는 터에
그들의 놀람을 어찌 나무랄 것인가...
사이버에서 서로 대화하다 직접 만나기도 하고 사귀기도 한다는 현실이라
그로 인하여 가정파탄에 이른 집도 적지않다고 이따금 매스컴에 오르기도 하지만
그렇게 쉽게 어울려지는 그들이 너무나 신기하게 여겨질 따름이다.
내가 너무나 의심이 많아선가...
얼굴도 보이지 않고, 나이며 직업이며 입증되는 것도 없는 사이버 세상...
그곳에는 오늘도 초를 다투듯 자판을 두드리는 이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으리라...
그들이 더 이상 외롭지 않게
그들이 그렇게 실내에 틀어박혀 한가로이 자판을 두드리며 시간을 보낼 겨를이 없을 정도로
경제 활동으로 인해 생활이 바빠 져 정신없이 사느라 행복에 겨운
'부'와 '풍요로움'만이 넘치는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사이버 세상이라지만
건전 문화를 만들어 갈 수만 있다면
마음 속 응어리나 스트레스를 정말 마음껏 풀어버릴 수 있는 최적의 장이기도 할텐데...
나를 드러내지 않고도 내 마음 속속들이 모두 털어 내 버릴 수 있는 정말 좋은 곳인데
밝은 면 보다는 어두운 면이 더 많이 부각된다는 현실이 참 아쉽다.
이참에 나도 아예 '사이버 상담실'이나 하나 개설해 볼까나...
마음 추스릴 곳 없어 허우적대는 이 땅의 외로운 아줌마들과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으로만 끙끙 앓아야 하는 홧병 난 여인네들이라면 누구든지 들어 와
가끔씩 남편이나 시어머님 , 또 자식들의 흉을 대화로 풀어 버릴 수 있는 그런 상담실...
내 나음 속의 아픔을 서로 토해 내어 나누어 풀어 가는 대화의 장...
굳이 애인을 구하지 않더라도 외로움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즐거운 곳...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면 콱 막혔던 마음 속이 후련해 지는 그런 곳...
오늘도 나는 그런 희망을 안고 부지런히 책을 펼친다.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하여...
내 마음 속 흉터를 가리기 위하여...
내 자신을 다스리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