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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25

불면의 밤


BY 민경 2004-01-09

불면의 밤!

겨울밤이 길다고 했던가

길다고 표현함이 무색할 정도로 ..넘 길다.

언제부터인가

불면이 날 찾아왔다 .

할 얘기가 많다고

하루,이틀 마주 앉아보니..정말 할 얘기가 너무 많다

며칠을 어영부영 밤을 보내도 도통 피곤하질 않는다

남편은 어디 아프냐고 안색이 않좋다고 걱정인데...

어린날 아버지가 생각난다

변변한 가로등도 없었던 시골의 풍경이 다 그렇듯이 

5시건,12시건, 해가 지면

다음날 동이 틀때까지는 그야말로 암흑천지였다.

밤이 더 환한 도시의 불야성과는 너무나 다른

적막하고,적적하고,무섭기까지 했던 시골의 겨울밤 .

초저녁 잠이 많으셨던 아버지는

9시뉴스만 겨우 보시고 주무셨다가

새벽 1-2시에는 또 어김없이 일어나셔서

거둬도 거둬도 걷히지 않는  

 칠흙같은 긴 겨울밤을 

소박하고 초라한 살림살이를

농협에서 신년에 나눠준 녹색수첩에

빼곡히 열심히 써 내려가셨다.

 

거기에는

작은오빠 등록금 마감날

소 교미한날

송아지 출산일.

양파파종시기

농협의 대출금

큰언니네 이삿날

큰오빠 우체국 월급날

작은언니 선 보던 날

녹동의 5일장

저축금액  

막내 초등학교 입학식

......그리고 자식들 생년월,시 ,태몽

자식들마다의 특징을 빼곡히 적어 두셨다.

자식을 팔남매나 두셨으니

오직 ...생각도, 걱정도 많으셨을까

왜, 안 주무시고 날을 새시면서 날마다 뭘 적으시는지

그때는 아버지를 이해 할 수 없었는데  

나도 그때의 아버지같은 부모가 되어보니

이제야 ...

아버지의 긴 겨울밤의 불면을  이해 할 것 같다 .

낮에는 허리가 휘도록 밭을 갈고

없는 시간을 쪼개다 보니  

어쩜 , 불면 아닌 불면을 자청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갑자기 너무 많아졌다.

그동안은 아이 둘 키우느라...바깥은 사치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감옥살이 같은 생활에

너무 힘들어하는 내게

어느날...남편이 그랬다 .

"당신 자신을 포기해 그럼 편해질거야 " 

난 그말을 되씹고 되씹으면서

서서히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하고

지금은 오히려 바깥이 두렵다

10년가까운 세월을

아내와,엄마로만 살아왔다

이제는 나를 찾아야 하기에....

머리는 온통

밤마다 만리장성을 쌓았다 ,허물었다 를 수십번 ..............

그래서

나도 아버지 처럼 수첩을 한권 장만했다

소득없는 불면을 청산하기 위해서

적다보면.....적다보면

가닥이 잡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