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
겨울밤이 길다고 했던가
길다고 표현함이 무색할 정도로 ..넘 길다.
언제부터인가
불면이 날 찾아왔다 .
할 얘기가 많다고
하루,이틀 마주 앉아보니..정말 할 얘기가 너무 많다
며칠을 어영부영 밤을 보내도 도통 피곤하질 않는다
남편은 어디 아프냐고 안색이 않좋다고 걱정인데...
어린날 아버지가 생각난다
변변한 가로등도 없었던 시골의 풍경이 다 그렇듯이
5시건,12시건, 해가 지면
다음날 동이 틀때까지는 그야말로 암흑천지였다.
밤이 더 환한 도시의 불야성과는 너무나 다른
적막하고,적적하고,무섭기까지 했던 시골의 겨울밤 .
초저녁 잠이 많으셨던 아버지는
9시뉴스만 겨우 보시고 주무셨다가
새벽 1-2시에는 또 어김없이 일어나셔서
거둬도 거둬도 걷히지 않는
칠흙같은 긴 겨울밤을
소박하고 초라한 살림살이를
농협에서 신년에 나눠준 녹색수첩에
빼곡히 열심히 써 내려가셨다.
거기에는
작은오빠 등록금 마감날
소 교미한날
송아지 출산일.
양파파종시기
농협의 대출금
큰언니네 이삿날
큰오빠 우체국 월급날
작은언니 선 보던 날
녹동의 5일장
저축금액
막내 초등학교 입학식
......그리고 자식들 생년월,시 ,태몽
자식들마다의 특징을 빼곡히 적어 두셨다.
자식을 팔남매나 두셨으니
오직 ...생각도, 걱정도 많으셨을까
왜, 안 주무시고 날을 새시면서 날마다 뭘 적으시는지
그때는 아버지를 이해 할 수 없었는데
나도 그때의 아버지같은 부모가 되어보니
이제야 ...
아버지의 긴 겨울밤의 불면을 이해 할 것 같다 .
낮에는 허리가 휘도록 밭을 갈고
없는 시간을 쪼개다 보니
어쩜 , 불면 아닌 불면을 자청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갑자기 너무 많아졌다.
그동안은 아이 둘 키우느라...바깥은 사치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감옥살이 같은 생활에
너무 힘들어하는 내게
어느날...남편이 그랬다 .
"당신 자신을 포기해 그럼 편해질거야 "
난 그말을 되씹고 되씹으면서
서서히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하고
지금은 오히려 바깥이 두렵다
10년가까운 세월을
아내와,엄마로만 살아왔다
이제는 나를 찾아야 하기에....
머리는 온통
밤마다 만리장성을 쌓았다 ,허물었다 를 수십번 ..............
그래서
나도 아버지 처럼 수첩을 한권 장만했다
소득없는 불면을 청산하기 위해서
적다보면.....적다보면
가닥이 잡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