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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실미도를 보고..


BY 도영 2004-01-03

영화 "실미도"가 개봉 됐다는 대대적인 선전에
수년전 소설가 백동호 소설"실미도"읽고 며칠 가슴이 아파
기분이 개운치 않았던 일이 떠올랐다.

먼저 작은 아들이 여자 친구하고 영화를 보고
이틀전에는 큰아들이 영화를 보고온후
""엄마..그영화 캡이드라..와,,볼만 하데요..""두 아들들의 영화평을 듣고 있자니
당장 달려가 보고싶었다.

같이갈 사람을 둘러보니 선택의 여지는 남편 뿐이였다
선택 받은 남편은 개끌려가듯 억지로 따라 가는 눈치가 역력 했지만
정초부터 마누라 한테 찍히면 일년이 평탄하지 않을거라는걸 익히 아는바.
남편은 양복을 빼입고 쪄죽을 만큼 양복위에 겹겹히 걸치고 완정 무장을 하는거였다.
마치 남극 여행을 가듯이..
아무튼 결혼하고 처음으로 돈주고 가는 영화관 이였다.

남편은 뭬가 그리 쑥쑤러운지 영화표를 끊고도 뻘뻐즘 하니 행동이 영 어색하다.
아마도 자식 같은 애들만 득실대는 영화관이 익숙치는 않은 눈치였는데
군데군데 우리 또래의 부부들이 보이자 어색한것은 다소 가라앉는듯 보였다.
영화는 시작되고 수년전본 실미도 내용을 더듬으며 영화속으로 몰입했으니.
실화를 바탕으로한 ""실미도""
박정희 목따러 왔다는 김신조 사건이 터지고 그당시 남파된 33인을 모델로
당시 정권도 33인의 특수부대를 창설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33인의 훈련병의 배경들은 사형수거나 혹은깡패거나 아니면 가난한 부모 형제가 없는 고아들이 대다수였을것이다.

이들 33인은 실미도라는 섬에서 3년을 상상 할수없는 지옥같은 지독한 훈련을 받고
마침내 인간병기가되어 김일성 목따러 갈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북파될날만 기다리며 ..
임무가 성공 했을시 죄를 사면해주고 남은 인생을 보장 해준다는 달콤한 사탕 발림에
영웅의 꿈을 안고 인간으로서 한계의 이르는 훈련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제1차 남북 회담이 열리면서 화해무드가 조성되자 국가는 33인의 훈련병들이
필요 없는 골치덩이가 되어 처치곤란 상태에서 놓이게 되었다.
살려두어서 비밀이 새 나갈까봐 전원 사살 하라는 지령이 떨어지지만.
이를 눈치챈 훈련병들은 감시하는 기간병들을 자신들이 사살되기 직전에 치고들어가
지긋지긋한 실미도란 섬에서 탈출 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의 탈출 의도는청와대로 들어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것.
주민등록증을 말소해 이름도 없는 그들..죽어도 문제가 안되는 그들의 말소된 신분이기에
작전이 성공해도 죽음이고
실패해도 죽음뿐이였다는것을 나중에 알고서야 배신감에 치를 떤 그들의 탈출은
유일한 선택이였는것은 당연한 것이였다.

청와대를 향하여 탈취한 버스를 타고가다 서울시내를 통과하기전에
군과 저격수들에게 에어싸인 그들은 군의 공격이 계속되자 인질들을 풀어주고
수류탄을 던져 자폭하기에 이른다.
자폭 하기전...
자신들의 말소된 이름들을 써내려간다..

""왜 우리가 이름이 없어..나는 누구누구..""
총격을 당해 흐르는 핏물로 자신의 이름을 버스벽에 써내려 가는 당시 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혹은 누이동생을 떠올리며 생의 마지막을 준비했을 그들.
한달후면 군에 입대할 내 아들 또래의 젊디젊은 그들..
불행한 시대에 불운하게 태어나 국가와 권력자들의 희생물이 되어버린 그들.
저격수들에게 총격당해 죽어가던 버스안에서의 어느 훈련병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한마디.
""너무한거 아니야?우리가 왜 무장 공비야.우린 국가의 명령을 받은 특수부대원인데 심한거 아니야..무장공비라니..""

당시 언론에서의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돌려버리려 했던 실미도사건..
좀 아쉽다면 인간 병기를 만들어낸 상상을 초월 하는 처철했던 훈련 과정들을
사실에 가깝게 그려내지 못한점과
그들의 인간적인 슬픈 내면을 관객들에게 충분히 전달 하지못한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환하게 들어오자
몆몆 사람들은 자리를 뜨지를 못햇다.
우리부부 역시도 자리에서 선뜻 일어날수가 없었다.
슬픔보다는 분노가 치밀어 조금전 눈물을 닦았던 휴지를 돌돌말면서
흰 스크린만 멍하니 올려다 보아야만 했다.
극장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구둣소리가 오늘따라 둔탁하게만 느껴지고
기분을 쇄신하고자 과메기 축제가 열리는 북부 해수욕장으로 차를 몰았다.

역사속에 묻힐뻔한 실미도 사건.
몇분의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제야 수면에 떠오른 비극적인 실미도 사건.

정책이 바꼈다고 아무 힘없는건장한 33인의 목숨을 개목숨 취급한 당시 정치인들..

소위 국가를 위하여라는 명분아래 그들을 희생시킨 그때 그사건을
이제는 철저히 재조명하여 진실을 밝혀내어
국가에게 이용당한 억울한 그들에 넋을 달래주길 바라면서..
짧고 불행한 인생을 살다간 그분들의 삼가 명복을 빕니다.






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