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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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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는 소리를 들어보신적이 있나요?


BY 마야 2004-01-03

아팠다. 열이 40도를 오르내리다가 마침내, 물만 먹어도 토할 때까지...

혼자 누워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또 눈을 뜨고, 다시 잠이 들었다.

"어쩌면, 오늘 눈이 올지도 몰라"라고 나를 위로하는 소리이겠지...라고 흘려들은 나는 출근하는 그에게 손도 흔들어 보이지 못하고 계속 누워있었다.

통증을 잊으려고 잠을 청하고, 잠에서 깨어나면, 몽롱한 상태로 머리맡에 놓여있는 물을 마시고, 구토가 일면, 옆에 있는 풀라스틱 통에 토하고....삼일 동안을 그렇게 아프다가 잠이 든, 오후 2003년 끝날. 전화 벨 소리가 들렸던것 같은데, 일어설 기운은 없고....

다시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생전에 즐겨먹지도 않았던, 뼈다귀 해장국, 꼬똘뼈기 김치, 파김치, 보쌈, 삼겹살, 하얀 쌀 밥이 눈앞을 요리저리 획일하고 지났다.

'죽을때가 되었나보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너무나 괴로워서, 눈물이 옆으로 또르륵 흘렀다.

매년 이맘때면, 앓는 몸살치고는 유난히 극성맞다.

 

열이 조금 내리는가 싶더니,  다시 잠이 들었다.

길가에 있는 우리집은, 150년이나 된 건물이지만, 집을 얼마나 잘 지었는지, 그다지 소음이 날 괴롭히는 일은 없다. 창너머로 보이는 작은 공원엔 아름드리 나무 여러그루가 있는데....

요리저리 휘어져 가지만으로도 나무값하는 나무들이다.

그런데,"사~각!...훅훅~! 삭..악삭~악." 마치 작은 요정들이 걷느데 발 소리를 안 내려고 애를 쓰며 걷는듯한 소리들이 비몽사몽간에 들렸다.

눈을 살며시 떴다.

한 순간, 나는 이제 정말 요정들을 만날 수 있나보구나 라는 한가닥의 희망이 나의 어여멀건한 얼굴에 미소를 남겼다. 방안을 눈만 굴려 요리저리 자세히 아주 천천히 둘러 보았다.

아무도 없다.

3시면 해가 지기 시작하는 창가는 이미 가로등 빛이 드리워져있다.

뭔가 희뿌옇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홀연 일어난 나는 창가의 창틀에 올라섰다.

"눈????아아~눈이구나."

눈이었다.

뭘 어쩌지라는 주저함도 없이 맨발에, 파자마 바람으로 뒷뜰로 나갔다. 뒤뜰하면, 단독주택을 가진 분들은 그냥, 뒤뜰 이겠지만, 여기 저희집은, 빅토리아 시대의 집이라, 아파트? 빌라? 처럼 옆집 또 옆집 이렇게 붙어서, 마당을 다 함께 쓰거든요....하여간, 나는 나갔고, 나간김에 벵글벵글, 눈을 따라 돌았죠...어지럽다 싶었는데.....아예 바닥에 누워서 눈 구경을 했어요.

꽃잎이 세찬 바람에 휘감기며, 날리듯이 방향이 일정하지 않게 쏟아지는 눈을 맞으면, 어쩐지 아픈것이 다 달아 날것 같아서요....

 

음...영국에도 눈은 오는구나...

새해 첫날을 White new year로 맞는군....

저 음울한 영국인의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을.

조심하며 살아가는 중류층의 여유없는 모두에게 웃음을.

밖이 안전하지 못해서 한 발작도 개가 없으면 못나가는 모든 영국인들의 얼굴에 웃음을.

올 새해에는, 세계 어느곳 어린이들이 헐벗지 않고, 가난한 내 이웃들이 굶주리지 않기를 빌며.

년말 송년 모시에 찿아온, 눈 요정에게 빌었다.

지금도 아프냐구요?

녜. 하지만, 덜해요.

I hope we have a wonderful new year and funky 2004 for ever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