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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흐린날엔..


BY 올리브 2003-11-20

아침부터 비가 내릴것 이라는 일기예보를 어제 듣고나서

또 망설여졌다..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비가 내 결정에 어떤 도움이 될수 있을지 그것도 답답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하는 고민덩어리를 결정내리지 못하고

밤새 갈팡질팡 그러다 날이 바뀌었다..

 

컴컴한 아침부터 날 주눅들게 만들었다..

 

가야하나 .. 가지뭐.. 어차피 오전엔 시간이 되니깐..

어떻게 걸려서 마련한 서류들인데..

그냥.. 가서 궁금한거나 물어보고 오자..

 

그래도 .. 좀 귀찮다.. 내가 정말 일이 필요해서 가야하는건지..

아님.. 잘 모르겠네.. 애고 모르겠다.. 일단 일어나자..

 

머릴 감고 세수하고 그러고나서 결정한건

 

안.가.

 

가뜩이나 겨울되면 움직이기 싫은데 혹시 일하라고 하면

어쩌냐.. 그냥 올해는 이렇게 보내버려?

 

그러다.. 핸드폰이 울렸다..

 

'' 오늘.. 10시는 괜찮겠어요? ''

 

'' 10시는 안되거든요.. 다시 날짜 잡아주시던지.. ''

 

그러다 ..

아냐.. 가자..

 

그래서 서둘러 화장대에 앉았다..

 

또 핸드폰이 울렸다..

 

'' 그럼.. 낼 오후에 약속날짜 다시 잡을께요.. ''

 

그러자.. 낼 가지뭐..

오전에 오랜만에 머리도 자르고 단정하게 이왕갈꺼면

이쁘게 차려입고 면접보지 뭐..

 

 

사실 다리가 망가지고 참 오랜만에 원없이 푹 쉬어버렸다..

그깟 오전에만 일을 해오던거 였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버겁게 해왔던 일이라 다리 망가지고

과감히 그만둬야 할 상황이 생긴덕에 지금까지 이렇게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 넌 좋겠다.. ''

 

'' 뭐가? ''

 

'' 집에서 놀고.. ''

 

언젠가 언니가 그렇게 말했을때 난 한숨이 나왔다..

초등학교 교사인 언니는 졸업후 육아휴직 외엔 쉬어본적이

없는지라 늘 어쩌다 자유를 누리는 날 부러워 했었다..

 

'' 뭐가 좋냐? 한번 나처럼 늘 놀아봐라.. 지겹다.. ''

 

하긴 나도 병원 다닐땐 어쩌다 가끔 쉬고 싶었다..

여행이 그리울때 .. 어쩌다 공휴일에도 근무해야 할땐 정말 쉬고

싶었고 일한다는 것에 대한 감동이 없었다..

 

근데..

이젠 다리가 아직도 좀 못 마땅하지만 일이 하고 싶었다.

아니 ..

내가 현관문을 열고 나갈수 있는 이유를 갖고 싶었다..

 

늘 열어보는 간호사들 모임 싸이트를 오늘도 열었보았더니

동호회가 열려 있었다.. 다들 바쁘게 임상에서 학교에서 나름대로

일하고 공부하는 선후배 소식을 접하면서 난 얼마나 게으르고

결단력이 없었는지 부끄러워 한참을 멍청하게 모니터만

응시하고 있었다..

 

올 봄부터 시작된 내 혼돈과 절망과 방황.. 그리고 풀리지 않는

모순덩어리들이 너무 길고 많았다.. 이젠 끊고 잘라서 정리도

해야했고 내 앞에서 날 뿌옇게 했던 과거들도 조금씩 지워야

한다는 절박함이 생겼다..

 

낼. 가.자.

그래서 내가 꼭 필요하다면 아니 내가 일이 필요하다면 다시

예전처럼 어렵던 상황을 버려 버리고 다리 망가지기 전으로

돌아가자..

 

그게 내가 오늘 해야 할일이고 봄부터 시작된 일들에 대한

해방일꺼다..

 

오늘처럼 흐린날에..

어둡고 칙칙하고 흐렸던 채울수 없었던 그리움을 다 안아주고

돌아서자.

 

낼 아침엔 오늘보다는 다르게 여유있는 얼굴로 큼직한 화장대에

앉아서 한번 씩 웃어주지 뭐.. 그리고 언제나처럼 천천히

걸어가자.. 아마도 오늘처럼 허둥대진 않겠지..

 

암.. 이젠 그러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