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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 이벤트)짚가리속에 숨어 먹던 그 추억


BY 양윤정 2003-11-11

제가 초등학교 5학년쯤의 일이니 벌써 25년이나 되는군요.

그 시절 저희 집은 작은 시골마을이었는데 때꺼리를 걱정해야 되는 만큼 가난했었지요.

지금 우리 아이들처럼 군것질을 한다는건 기대도 하지 않았던것 같아요.

기껏해야 소풍가는날 운동회날에 삶은 계란에 울쿤감 알사탕 몇개에 도시락을 싸간게 전부였지요.

지금은 흔하디 흔한 라면을 친구가 학교에 갖고와 라면 스프를 손바닥에다 조금씩 덜어주면

맛있다고 혓바닥으로 핥아먹었으니까요.

1남 5녀나 되는 아이들을 두살터울로 낳은 저희 부모님은 마음도 몸도 늘 바쁘셨던것 같아요.

늘 밤늦게까지 바깥일을 하고 돌아오시는 부모님을 생각해 집안일이며 어린동생 돌보는일은

아예 우리 몫의 일로 인정하고 당연시 받아들였지요.

그런데 어느날인가 밤늦게 돌아오시는 부모님의 심정이 편치 않으셨던지 엄만 집안일의

이것저것을 흠을 잡으시면서 저희를 혼내시더군요.

저희는 한다고 했는데...엄마의 화내는 모습에 그 자리에 더 있으면 몸둥이로 맞을것같아

저는 바로 밑에 동생과 집밖으로 나왔고 언닌 따로 집밖으로 나와 친구네 집에 피신가있었더군요.

자존심 강하고 고집쎈 저로선 밤늦게 친구네 집을 찾아간다는것도 그렇고

따로 갈데는 없고 해서 동생과 그 늦은 밤에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있다가 배는 고프고 해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는 친구엄마한테 엄마가 외상으로 사오라고 했다며 이것저것 먹을걸

주섬주섬 집어들었지요.

그리고 나와서 찾아간곳이 가을걷이를 끝낸 짚을 던져논 짚가리속으로 들어가는거였어요.

옛날 초가집이 짚을 이용한거며 화장실 문이며 고구마통이며 짚을 이용해 찬바람을 막고

온기를 느낄수 있던 여러가지것들을 생각하며 그곳이라면 그렇게 춥진 않을꺼란 생각이었죠.

그렇게 한참을 얼굴만 빼꼼 내밀고 짚가리속에서 우린 사온 먹을것들을 맛있게 먹고 무서움도 잊고 하늘의 별도 보면서 동생과 한참을 보냈지요.

그러다 우리를 찾아다니는 엄마를 발견했어요.

우린 이젠 집에 들어가도 괜찮을꺼란 계산으로 집에 들어갔지요.

그런데 속상하고 화난 생각에 그리고 배고픔을 이기려고 외상으로 사먹은 외상값이 생각나

다시 걱정이 되더군요.

그 며칠뒤 가게 아줌마한테 얘길듣고 외상값을 갚은 엄마는 저의 행동에 어리둥절해할뿐

크게 혼내진 않으시더군요.

가끔씩 그때를 떠올리면 저 참 당돌했던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