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에 없던 교육을 받느라 퇴근 후 1시간을 보내고 나니
딸아이와 안경점에 가기로 한 약속시간을 지킬수가 없을 것 같아
분주한 마음으로 귀가를 서두른다.
아니나 다를까 교차로 신호대기 중에 시간 못맞추는 엄마를
화급히 불러 댄다.
가까운 거리는 운동삼아 걸어 다녀야 한다며
양손에 딸아이들 손잡아 끌며 어둠 내린 거리를 나섰다.
며칠전의 쌀쌀하던 날씨는 간데 없고, 포근한 가을 저녁이다.
휘어진 안경다리를 바로 잡아 주고 나니
바람결에 실려온 근처 석갈비집에서 풍겨나오는 요란한 냄새에
아이들은 시장기를 느끼는지 어느새 엄마를 그리로 잡아 끈다.
아빠의 핸펀으로 연신 신호음을 보내가며
횡단보도를 건너 식당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까지도
여전히 통화가 안된 모양이다.
그냥 우리들 끼리 먹고 가지고 말은 그리 했지만,
달랑 딸래미 둘과 엄마 이렇게 셋이서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뭔지 모를 빈 구석이 느껴지는 것 같다.
요즘 키가 크려고 하는지 고기가 당긴다는 딸아이의 애교스러움이
남편도 없는 저녁 우리들 끼리의 외식자리를 만들고 있다.
야채를 곁들여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아랑곳 하질 않고,
아이들은 부지런히 젓가락으로 갈비를 날라댄다.
어찌나 맛있게들 먹던지 그냥 집에 가서 먹자 했으면
서운하다 했을 것 같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큰 아이는 엄마의 지갑속에서 500원짜리 동전하나를 꺼내들고는
먼저 자릴 털고 일어 서길래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 보았더니만,
카운터 옆 자판기에서 커피한잔을 뽑아 제 엄마에게 건넨다.
어둠 내린 거리로 나서서 한두모금 커피를 음미하며
딸아이들과 팔장을 끼고 걷는 일도 나름대로는 재미가 쏠쏠하다.
허기를 채우고 나니 이제서야 편안해졌는지 아이들은 엄마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엄마!! 우리는 이만하면 평범하게 사는 거지?
따뜻하게 돌아가서 쉴 내 집이 있고,
먹고 싶은 음식은 언제든 먹을 수 있으니까요 ...ㅎㅎ"
초등4학년 아이의 눈으로 바라 본 우리 집은
아주 평범한 가정으로 비추어졌었나보다.
"그래 ... 아마 그럴꺼야 ... ㅎㅎ"
그 순간 나는 아이의 마음속에 한점 구김살 없이 밝아 보이는 모습이
그래도 참 다행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낮에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 생각만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이야기인즉 피아노 학원에 같이 가야 하는데
동생이 잠을 자는 것도 아닌데 일어 나질 않고 누워 있다며
화급하게 전화가 걸려 왔다.
"왜? 놀다가 자빠졌니? 왜? 무슨 일인데? 눈을 뜨고 있으면서 왜 못일어 난다니? "
그 짧은 시간동안 참 많이도 질문을 해 대던 나의 머리속은
순간 이런 저런 생각들로 복잡해졌고, 가슴은 철렁 내려 앉았다.
아이들 끼리 집안에서 놀다가 무슨 사고라도 난 것은 아닐까?
싶어서 ...
나중에 알고 보니
제 언니하고 무슨 다툼이 있었는지
작은아이가 심술이 나서 그런 거라는 ...
이야기를 듣게 되니 너무 어이가 없다.
우리는 지금 평범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아이들의 말처럼
주어진 하루를 별탈 없이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속에 담겨진 감사해야 할 부분을
그냥 지나쳐 버려서는 안될 것 같다.
가족 모두가 이만큼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도
평범하게 산다는 것일테고,
또 하루를 무탈하게 살아낼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크나 큰 축복일 수 있을꺼라는 생각을 하면서
배불리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절에
행복은 사소한 것에서 오고 있을 꺼라는 안도감이 든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고,
어쩌면 가장 쉬운 일일 수도 있겠지 ...
지금 자신의 삶을 가만히 돌아 보는 시간으로
하루중 얼마간을 비워 두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의 키가 자라나듯 내 안에서는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지혜로움에
보다 더 깊이가 더해 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언제까지나 그 아이들에게는 따스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지닌
엄마의 모습으로 머물고 싶다는 욕심을 가져 본다.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참으로 따스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아이들 스스로가 느끼면서 살 수 있는 집이란
평범함을 넘어서서 진정 행복한 가정이라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밝고 구김살 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세상을 살아가야 할 새로운 힘을 얻을 때가 있다.
무한한 에너지를 그 아이들은 내게 준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가장 힘든 것이기도 하며
가장 행복하게 사는 것이기도 할 꺼라는 ...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보며
오늘도 난 나의 일터에서 내게 주어진 하루를
소중한 마음으로 받아 든다.
또 하루를 써 버렸다는 생각이 들기 보다는
내 안에 오랫동안 간직해 두고 싶은 기억에 남는 하루였으면
좋겠다는 바램과 함께
지금처럼 이런 평범한 삶 속에서
언뜻 언뜻 보이는 행복의 실체에 대하여
항상 감사하는 모습으로 살고 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