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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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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각시의 결혼 기념일


BY 27kaksi 2003-11-06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가 있나요~ 하는

유행가 가사처럼 참 시간이 많이 갔다.

그와 결혼한지가 26년!

오늘 결혼 기념일이다.

살아온 날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게 내게 안겨져 온다.

늦동이인 내가 못 미더워 동갑내기 신랑을 반대했던 어른들의 염려가

사실은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려주려고 참 열심히 살았다.

아내로 주부로 엄마로.....

물론 남편의 변함없는 사랑이 뒷받침을 해주었기 때문에 이제까지

우리 가정은 주위의 부러움을 받는다.

세아이들이 잘 자라서 이젠 큰아이는 결혼날짜가 잡혔고, 둘째는 내년

이면 졸업이고 막내 아들은 훈련소에 있으니 마치고 오면 노동부에서

군대를 대신하니 쉬운일이고,....

갑자기 휴~우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정작 그에게 좋은 아내였는지는 해답을 그가 알고 있으니 알 수가

없지만.....

연애기간을 포함해30년. 우린 어떤 부부일까?

우리 그인 얼굴이 하얗고 구렛나루가 매력이 있는 미남이다. 난 그의

푸르스름한 면도 자국이 있는 지적인 볼을 좋아한다.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너네 신랑 푸른 면도자국있는 구렛나루가 아직도멋있니?" 하고 묻는다.

이젠 머리도 빠지고 샤프한 맛은 떨어졌지만, 난,

"응" 하고 대답한다.

우리가 지천명의 나이를 먹으면서도 닭살 커플로 이름을 달고 다니는

것은 순전히 그의 오~버 하는 입 서비스 때문이다.

그는 늘 내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하도 들어 주제가가 되어

있고 어느곳에 가던지 그러는통에 이젠 사람들도 그러려니 한다.

처음 모르는 사람은 약점 잡혀서 사나보라고 생각들을 한다나뭐라나..,

그의 지론을 들으면 말로 들어내므로 행동도 따라오게 된다고 한다.

특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가족모임이나, 친구들 모임에서도 그의버릇은

틀림없이 나타나서 날 당황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듣거나, 보거나

말거나 애정표시를 한다 . 특별한 것은 아니다.

손을 잡는다든지 음식을 많이 먹으라고 챙긴다든지 뭐 그런것들이다.

그렇게 남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는 아니지만,

그러나 표현에 서툴은 주위의 중년들은 쉬지않고 비난의 화살을 쏜다.

"야! 무철이 아직도 쥐어 사냐! 뭐 큰소리 못칠 일이 있나보지!

야! 그만해라, 됐다.! 너때문에 오늘 집에가면 편히 못잔다!"

아무리 그런 말을 들어도 늘 그는 그렇게 한다. 그렇다고 그가 평소에

사근 사근 하거나 그런남자도 아니다. 오히려 과묵한 편이라서 말도

없고 차가울 정도다. 아마 그의 애정표현의 한 방법인 모양이다.

아이들도 늘 우리의 다정한 모습만 보기 때문에 엄마 아빠 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감사한 일이다.

그동안 부족함없이 나에게 아늑한 삶을 허락한 그에게 난 오늘 또한번

고마운 마음을 가져본다.

세쌍 가운데 한가정은 이혼을 하는 불안한 세태에서, 강산이 두번이나

변하고도 남는 세월을 한결같이 지내온 우리부부는 앞으로의 삶도

그렇게 살아가리라 다짐해본다.

아름다운 기억들과 좋은 추억들을 되새기며.....

결혼 기념일에 기억나는 추억으로는,

그가 해외 근무를 하고 돌아오던, 그러니까 큰딸아이가 첫돐이 되기전

이었다. 나는 눈이 쑥 들어갈 만큼 그를 보고 싶어 했었는데 -그땐 엄청

말랐었다- 지연이를 데리고 공항에 마중을 나갔는데, 머리가 길어서

-그땐 남자들의 머리가 짧을 때였다- 걸어나오는 그가 어찌나 낯설던지,

영화에서 처럼 뛰어가서 안기려고 몇백번 마음으로 연습을 했건만,

그냥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전혀 모르는 남자를 보는듯이.....

그는 후에도 그때 섭섭했다고 말한다. 나의 수줍은 성격때문도 있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도 떨어져 있으면 서먹해 진다는걸 그때 알았다.

참으로 다행스럽게 그후로 우리 부부는 헤어져 사는일은 없었다.

그리고,

몇년전인가 결혼 기념일에 경주로 여행을 갔을때,

코오롱 cc 에서 골프를 치는데 해가 뉘엿 떨어지고 노을이 빨갛게 잔디

에 깔리면서, 봉덕사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던지, 난 소름이 돋는 것을 경험했다. 그와 난 한참이나 그대로

그자리에 서서 은은히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들었다. 그 감동은 지금도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우리 부부를 축복하는 것이라고 우리끼리 해석하고, 좋아했었다.

또, 3년전인가는 아이들이 영화예매를 해주어서 보고 집에 왔는데

현관에서부터 촛불로 길을 만들어 놓고, 온통거실에 풍선을 불어서 장식

하고 우리를 감격 시켰다.

우리가 결혼을 했으므로 저희들이 세상에 나왔으니 감사하다는 아이들

의 케잌과 꽃다발!, 난 그때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했다.

아름다운 가족을 나에게 허락하심을..........

어느핸가는,

백송이 장미를 그가 집으로 배달을 시켜 날 기쁘게 해주기도 했고,

매해마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감동적인 사연을 글로 써주고 있다.

너무 많아서 이곳에 다 옮길 수가 없을 정도이다.

난 축복을 많이 받은 행복한 각시이다.

이젠 받은것을 가족과 남편에게, 그리고 앞으로 가족이될 사위나,

미래의 며느리에게 모두 돌려주고 가르켜주고가야지.... 내사는동안.....

그러면 우리집은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한 가정이 될꺼야.......

꼭 그럴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