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중 목욕탕 가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오로지 한가지
때밀러 갑니다.
당연한 말을 하니 웃습지요? 어쨌든
뜨끈한 물에 푹 담그고는 하나, 둘, 셋, 넷...100까지 바로 세고, 거꾸로 세고...
몇 순번 하고 나면 온 몸에선 김이 모락 모락 나고, 살은 적당히 불쿼지지요.
명칭 '이태리 타올'을 손바닥에 싸 감아 쥐고는 적당히 힘 줘 가며
온 몸 구석 구석을 밀어 대다 보면 손이 닿지 않는 등 부분이 남게 됩니다.
대중 목욕탕의 묘미는 이제 여기 부텁니다.
주변을 휘 둘러 보며 품앗이 등 밀이 상대를 찾아내는 일 말입니다.
그리곤 '저~~ 같이 등 미실래요?'.....
발가 벗은 이웃간의 온정으로 목욕 문화는 꽃이 핀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몸에 붙어 생명 다한 집착은 아낌 없이 벗겨 내고
잠깐이지만 스쳐간 따스한 인연의 손 길은 내 등에 얹어 놓고
그 기분으로 적어도 일주일은 개운하게 살았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근데 요즘 대중 목욕탕 모습은 참 많이 달라 졌어요.
그래서 그 당연한 말이 당연이 아니더란 말이죠.
벗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뭘 그렇게 많이들 붙이고 바르는지...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로 헛구역질 하기를 몇 번였는데 그러다 생각 했습니다.
내 몸이 주인 잘 못 만난 죄로 저런 호사 한 번 못해 보고
허구 헌 날 애꿎은 허물만 벗어 내야 하는 구나 하고 말입니다.
근데 문제는 내 등이더란 말입니다.
아무리 둘러 봐도 말 붙일 사람이 없어요.
쭈빗 쭈빗 용기를 내어 몇 번 시도 하다가 두어번 무안을 당한 뒤로는
아예 품앗이 등밀이는 포기 했습니다.
그러니 목욕 하고 나와도 이래 저래 개운하기가 예전만 못하지요.
세상이 변해 가니 별 것이 다 변해 가지 싶습니다.
누구 저 등 좀 밀어 주실 분 안 계신가요?
오늘도 목욕탕 다녀 오는 길에 뜬금 없이 한 생각이 일었습니다.
생각 난 그 古辭를 옮기자면 이렇습니다.
성현의 한 제자가 수승하여 도가 눈 앞에 있었는데
그런 제자 앞에 어느 날 홀연히 절세 가인이 나타납니다.
그 이후 제자의 생각과 몸은 걷잡을 수 없는 욕정으로 치달으니
공부도 깨달음도 요원한 일이 되는 듯 했습니다.
하기에 안타까운 스승은 한 날 그 제자를 부릅니다.
그리고는 그 여인에게로 데려가 여인의 실체를 보라 이르십니다.
다시 봐도 역시나 눈 부신 아름다움에 황홀 지경이었습니다.
그 순간 스승은 신통 묘법을 내시어 여인의 몸을 투시 하여 보여 주십니다.
그랬더니 '아!~~~'
내장엔 온통 똥물이요, 살갗 벗겨진 해골은 괴이 하기가 이를데 없고,
피에.. 고름에.. 진액에..
그만 제자는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몸이란 그런 것이다.
온 맘을 다 빼앗긴 그 아름다운 외모란 것이 이렇듯 허상임을 알라
성현의 가르치심 입니다.
허접하게 목욕 얘기 하다 말고 감히 성현의 말씀을 인용 했습니다만
문득 몸 가꾸는 정성 만큼이나 맘 가꾸는 일에도
그 만한 정성을 쏟고 있는지 내게 묻고 싶어 졌습니다.
몸의 때는 한 티끌 만큼도 안 남기겠다는 의지로 박박 밀어 대면서
정작 맘의 때는 어느 만큼의 의지와 습관으로 벗어 내고 있는지
내 자신 한테 한 번 물어 보고 싶어 졌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뻔 합디다.
그래서 하늘 보고 한 번 웃었답니다.
발가 벗고 道라니...
젖은 머리 위로 살가운 바람 한 줄기 지나 가니 그것이 정겨운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