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전에 내려갔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출장이고 더 근사한 표현을 만들자면
올해까지 주말부부처럼 살아야 할 날들이 펼쳐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
이런 표현을 달아대는 나한테 선배는 뭐가 그리도 좋냐고 반문했다..
'' 니 남편은 저녁도 거의 매일 먹고 들어오고 넌 아이도
하나면서 뭐가 그리도 좋니.. 남편 없으면 혼자자기 좀
무섭지 않니? ''
'' 뭐가 무서워? 문 걸어 잠그고 자는데.. 난 이해가 안돼.
내 친구는 남편 없다고 친정으로 쪼르르 달려가는데 말야..''
자유가 주어졌다..
통금도 없어졌다.. 날 답답하게 매어 놓았던 그 묶임에서
벗어날수가 있는것이다..
별다른 나만의 이벤트가 없어도 내 남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쩐지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 비슷한게 늘 날 불편하게
만들곤 했었다..
'' 언제지? 언제부터 출장이야? ''
'' 넌 내가 출장 가는게 그렇게 좋냐? ''
'' 좋다기보다 좀 자유로운 기분이 들지.. ''
'' 난 저번에 출장 갔을때도 혼자 밥 먹는데 니랑 우리딸
생각 나더라.. ''
'' 왠일이야? 늙어 간다는 증거아냐? ''
'' 난 아직 그렇진 않아.. 친구들이랑 있어도 집 생각은
잘 안나고 더 얘기하고 싶고 집에 오기 싫을때도 있어..''
'' 닌 결혼을 해도 결혼전이랑 그 모자란 생각이 변하질
안냐.. 너 몇살인지 알아? ''
여기서 재빠르게 말 바꿔 나오지 않으면 우리 두사람 중에
한사람이 삐지거나 아님 불만 덩어리 사건들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온다는걸 내가 겪어봐서 너무도 잘 아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가 알아서 서둘러 끝내야 했다..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고 둘이서 만난거 간식 만들어
먹고 저녁에 얼굴 마주하고 촛불 켜놓고 와인 잔에 딸아인 포도쥬스를
부어놓고 내 잔엔 빠알간 와인을 부어놓고 나면
'' 엄마.. 우리 아름다운 음악 틀자.. CD 틀어? 아니면 93.1 틀어? ''
'' 니가 좋아하는거 있잖아.. 그거 듣자.. ''
난 그랬다..
어쩌다 주어지는 자유를 딸아이와 할때는 남자가 끼여들지
못하는 감성이 있어서 좋았다.. 딸아이도 그것을 좋아하고..
나한테 주어진 딸아이와의 감성이 그리워서 남자의 부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엄마.. 아빠 언제 와? ''
'' 왜? ''
'' 그냥.. 아빠도 있으면 어땠을까? ''
'' 담엔 아빠랑 그렇게 하지 뭐..''
'' 그래..''
촛불이 휘청거리며 타들어가는 풍경을 두 여자가 손잡고 지켜보았다..
딸아이와 함께하는 아까운 저녁풍경이 이쁘고 사랑스러워서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억지와 분노와 갈망이.. 지옥같았던 감정들이 ..
다 녹아 없어지는 걸 바라다 보았다..
그러다.. 난 잠깐 눈을 감아버렸다..
이것이 남자가 내게 주는 유일한 선물 이란걸 감사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