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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자와 두여자의 외출


BY 올리브 2003-10-27

교통사고로 차를 폐차 시키고 차를 기다리는 과정이 참 고역이었다..

차에 대해 관심없었던 난 차를 그냥 신청하면 바로 탈수 있을줄 알았고

2달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최후통첩이 망가진 다리와 덩달아 내 발목을

붙들어 매고 있었다..

 

차가 없이도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일산에 살다보니 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조급한 맘 비우고 기다리는 처절한 인내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결정한것이 일산에 살면서도 그것도 걸어서 갈수도 있는 멀고도

가까운 곳에 넓고 넓은 호수공원이 있으면서도 일년에 계절이 바뀔때마다

어쩌다 찾는 그 곳을 다시 찾기로 맘먹고 준비에 나섰다..

 

예전같으면 김밥 돌돌말아 이쁘게 담고 과일도 썰어서 가져가고 부릴수 있는

멋을 다 냈겠지만 이젠 준비하는일도 지쳐가고 또 사서 먹는게 더 맛있다는

내 남자덕에 편한 외출로 결정했다..

 

김밥이랑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보채는 내 남자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

 

'' 애는 좋아하지도 않는데 뭔 남자가 애들처럼 햄버거를  그렇게 못 먹어서

   안달이냐? 또 뭐 사? ''

 

'' 햄버거는 콜라랑 먹어야 하니깐 콜라도 사야 되는거 알지?''

 

'' 또 없어?''

 

'' 캔 맥주 두개만 사. 끝.''

 

내 남자의 먹으러 가는 목적과 호수의 넓은 바다같은 느낌이 좋아서 찾아가는

나와 인라인 배운지 얼마 안되는 딸아이의 기대가 막 뭉겨져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내 남자가 자꾸 이상한 샛길로 빠지기 시작했다..

 

'' 어디가? 거긴 아파트 길이잖아.. 뭐하러 걸어서 그런대로 가..''

 

'' 여기가 지름길이야 .. ''

 

'' 걸어서 갈꺼면서 뭐하러 그런 삭막한 동네로 가냐구..

   저기 저 공원길로 갈려구 일부러 걸어가는건데.. ''

 

늘 이랬다..

오로지 차에 목숨걸고 다니는 내 남자와 보는것 만으로도 황홀해서 아까워하는

나와 늘 이렇게 어긋났다..

 

사가지고 온 점심 도시락도 이왕이면 이뻐보이는 곳에서 먹고 싶은데 아무데서나

먹자고 부득부득 우겨댔고 그런 내 남자의 무미건조함에 내가 초라하고 불쌍해지다

가슴 밑바닥에서 절망 비슷한 어거지가 날 아프게 하고 그랬다..

 

김밥에다 햄거거와 콜라까지 다 먹어치우고 딸아이의 인라인을 넓은곳에서 태우기

위해 자리를 옯기기로 했다..

 

올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난 호수공원의 넓은 가슴이 미치도록 그리웠었다..

그리고..

이곳에 온 사람들의 모습이 날 참 주눅들게 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정하게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 ..

젊은 부부의 손잡고 걸어가는 정 듬뿍 닮은 그림같았던 모습 ..

잔디밭에서 남자가 여자를 위해 뭔가를 열심히 준비하던 모습 ..

그리고.. 평일이든 주말이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예비부부의 웨딩촬영 모습 ..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들의 아이가 함께 자전거 타고 깔깔대며 지나치는 모습 ..

 

이런게 날 자극해서 어쩌면 내가 호수공원을 자주 찾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내 남자는 이런 내 감성을 버거워했다..

함께 걸을때 팔짱이라도 낄려면 어색해 했고 남들처럼 인라인도 타고 싶어서

그렇게도 했지만 내 다리가 망가져 버리는 시간이 있었고 그래서.. 어찌어찌

불운을 맞이했다..

 

늘 딸아이한테 미안했지만 내 남자와 함께하는 외출은 나한테 상처로 되돌아

오곤 했다.. 그럴때마다 난 무심한 남자덕에 혼자서 많이 아팠었고..

그리고 혼자서 일어서야 했다..

 

어제도 그랬다..

 

맥주를 즐겨찾는 내 남자가 맥주도 사라고 했을때 난 집에서 마시고 싶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외출이라서 내 남자 맘을 맞춰주고 싶었다..

 

화장실 갔다 올테니 저기 호수 보이는 의자에 앉아 있으라는 내 말을 무시하고

호수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는 모습도 내 맘을 상하게 했었고 갑자기 혼자가

되고 싶어졌다..

 

의자에 앉아서 캔맥주를 따서 한모금 서둘러 마시고 멍하게 호수를 바라다

보고 있었다..

 

'' 넌.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여기서 맥주를 마시냐?''

 

잔뜩 찌푸린 얼굴로 거기다 못 마땅한 얼굴로 날 질책하는 남자를 한번 올려다

보고 나서야 난 알아버렸다..

 

또 이 남잔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구나..

내가 다른사람한테 어찌 비춰질까봐 그게 싫은거 였다..

 

쫄면을 좋아하는 내가 단무지가 더 먹고 싶다고 대신 좀 시켜 달라고 하면

그냥 있는걸로 대충 먹지 뭘 미안하게 더 요구 하냐고 딱 잘라 말했을때 ..

 

입에 고추장이 묻었을까봐 휴지로 연신 찍어내면서 먹어대는 나한테 휴지를

왜 그렇게 많이 쓰냐..

 

연애할때 참 많이 서럽고 답답했었다..

살아보니 지금도 변한건 없었고 이 남자와의 외출은 늘 이렇게 상황변동이

많았다..

 

난 치사스런 이 남자를 떨구어 내고 싶었다 .. 그래서.. 다른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엄마.. 어디가... ''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눈물이 뿌려대서 되돌아 갈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저만치에 있는 잔디밭에 들어서 앉아서 남은 맥주를 다 비워내고

났을때 딸아이의 목소리를 확인했다..

 

'' 엄마.. 나 왔어..''

 

'' 너.. 왜 여기 있냐.. 말도 없이.. ''

 

'' 거기서 먹지 말래며.. 누가 우리한테 관심이 있다고 늘 그렇게 노심초사야.. ''

 

'' 가.자.''

 

'' 안.가.''

 

'' 나도 안가..''

 

딸아이가 내 편을 들어줬다..

 

니 맘대로 하라고 쏘아대며 나와 내 딸을 멀리하고 돌아서는 남자의 발걸음을

확인하고 두 여잔 다시 호수가 보이는 넓은 가슴이 보고 싶어서 걷기 시작했다..

차라리 이렇게 두여자가  서로 손잡고 걷는게 맘이 편하고 쉬웠다..

 

다시 내 맘은 아려왔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외출이 더 망가지는게 싫어서

서둘러 걸었다..

 

딸아이의 인라인 타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주고 싶어서 열심히 눌러댔고

커피 뽑아온 보온병에서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향 좋은 커피를 따라 마시면서

내 맘이 늦가을처럼 서러워졌다..

 

또 눈물이 뿌려대려고 할때

 

'' 엄마.. 나 오늘 재미 있었어.. ''

 

엄마의 아픔이 보기 싫어서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자 애쓰는 딸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고 참 미안했다..

 

벌써 세번째다 ..

호수공원에서 이렇게 눈물 뿌려대며 아팠던 일이..

 

내가 좋아하는 선배는 이런 상황을 두사람의 감정코드가 달라서 그렇다고

설명해 줬었다.. 아니 남자와 여자의 감정코드 일부분이 맞지 않아서 벌어지는

상황이란걸 나도 잘 알지만 그래도 난 내 감성을 사랑해주고 다른사람보다 날

더 매만져주는 남자가 그리워졌다..

 

내가 이 남자랑 살면서 내가 풀어가야 할 숙제임을 오늘 다시 확인하고

돌아오는 내내 가슴 한구석에서 시린 바람이 불었다..

많이 쓸쓸하고 추웠다..

 

그리고.. 밀려드는 억울함 때문에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