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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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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보석상자


BY 쟈스민 2003-10-16

해가 많이 짧아졌는지 요즈음 퇴근길은 제법 어둑어둑하다.

 

마음 같아선 스산한 거리로 나서 하릴없이 걷고 싶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고도 싶다.

 

때론 시간 맞춰 돌아가야 할 나의 집을 외면한 채

가을 냄새 가득 머금은 모습으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내안에서 출렁일 때가 있다.

 

하루 종일 어디엔가 나를 붙들어 놓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 하루를 살아낸 것 같은 생각이 들 땐 

저녁시간만큼이라도 마음껏 자유로운 날개를 펴고 싶어진다.

 

하지만 늘 마음으로만 그칠뿐 몇가지 반찬꺼리를 들고서

들어선 집안에선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듯  아이들이 엄마를 반긴다.

 

일찌감치  어둠이 내린 아파트 단지에 하나 둘 불이 켜지면

우리 아이들은 뭔지 모를 쓸쓸함 때문인지 거실등을 모두 켜 둔채

엄마 올 때만 기다리는 눈치다.

 

서둘러 저녁밥을 안치고,

퇴근길 차안에서부터 구상했던 저녁메뉴를 떠올리며

바쁜 손놀림을 하다 보면

아이들의 배에선 어서 밥 달라고 보채기라도 하는지

아이들은 엄마의 동작 하나 하나에 관심을 보인다.

 

식탁위에 따뜻한 음식들이 차려질 때 까지도 

돌아올 기미 조차 보이지 않는 남편을 언뜻언뜻 떠올리며

오늘도  아이들 하고만 먹어야 하는 저녁상에서

괜스레 맥이 빠질때가 참으로 여러 날이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아이들은 참 할말도 많다.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죄다 종알거리랴 밥 먹으랴 정신이 없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키

제법 성숙해진 외양뿐만 아니라 마음 씀씀이도 곱게 자라나주는 아이들이

그저 고맙고 대견하여 될 수 있으면 잘못한 일이 있어도

꾸지람 보다는 칭찬해 주려 애쓴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삐뚤빼뚤거리는 글씨로 써 내려간 편지글에서도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읽을수가 있으니 그렇게 예쁠수가 없다.

 

아직도 엄마가 좋은 나이

컴퓨터 게임 보다 친구가 좋은 나이

할머니댁에서 보낸 지금 보다 더 어린시절의 추억이 그리운지

아기적 사진을 꺼내어 보며 까르르 소리내어 웃길 좋아하며

유난히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많은 아이들 ...

 

남편이 미처 메꾸어 주지 못하는 빈 구석에서 문득문득 느껴지는

황량한 바람같은 허전함을  아이들은 곧잘 채워 준다.

 

내 어릴적 추억을 더듬으며

아이들과 함께 공기놀이를 하고,

때론 종이접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세상살이 시름쯤은 잠시 잊어 볼 수가 있어서

그 시간만큼은 집안 일을 잠시 미루어 두어도 마냥 좋기만 하다.

 

다른집들은 아빠가 일찍 퇴근하여 책도 잘 읽어 준다던데

도무지 우리집은 모든게 엄마 몫이고 보니

아이들이 읽기 어려워하는 역사책을

뒤늦은 공부를 하듯 다시 읽어야 하는 시간으로

하루중의 얼마만큼을 떼어 놓아야 하니  

살아가는 일이 늘 바쁘다 바빠의 연속이다.

 

그리 여유롭지 않은 가운데서도 미래를 위하여 저축을 하여야 하듯

지금의 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온통 사랑을 저축해야 할텐데

그것이 말처럼 그리 쉽지 않을 때가 더러 있다.

 

하는일이 바쁘다 보니 집안일에 신경쓸 시간조차 없는 남편을 지켜보면

늘어만 가는 불평불만을 어찌할 수는 없지만,

그런 푸념을 늘어 놓고 있을 시간조차

아이들에게 좀더 신경써 주어야 하는 시간인 것만 같아

간결한 요약분만을 말하고는 넘어가기 일쑤다.

 

하긴 그 남자도 일찍 귀가하여

토끼같은 자식들과 알콩달콩 저녁나절을 보내고 싶은 마음

왜 없을까 싶은 지경까지 생각이 미치다 보면

마음먹었던 대로 바가지를 긁어대는 일도 쉽지가 않다.

 

다만 지금 이런 시간들의 고생스러움이

먼 미래엔 제발 덕분에 알찬 결실로 되돌아와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추억할 수 있는 시간으로 남아 주길 바라는

마음만은 간절하다.

 

피곤에 지쳐 잠든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삶의 고민과 번뇌조차

기꺼이 안고 가야할 내 몫의 삶인 듯 싶어

내 마음속 보석상자에 소중하게 담아 두고는

가끔씩 외로움으로 눈물 나는 날에

한번씩 꺼내어 나를 그리고 그를 다독이고 싶다.  

 

우린 지금 분명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