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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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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리꽃같은 둘째 이모.


BY 도영 2003-10-16

내겐 이모가 다섯분이 였는데

내 이모 들은 다들  보통은 넘는 인물이셨다.

그중 둘째 이모와 셋째 이모가 어린시절 내눈에는 가장 이쁜 이모들로 기억이 되는데

둘째 이모는 군인인 이모부와 결혼을 하셨고

세째 이모는 소아과 닥터랑 결혼을 하셨는데

당시 가난 했던 우리집  형편과 너무도 환경이 달라 나는 이종 사촌들이 부럽기도 했고 풍족한 생활을 하는 이종사촌들에게 이질감이 느껴진 탓인지 어울린 기억이 별루없었다.

이모 다섯분중 둘째이모는 사는게 어려운 맏 언니인 돌아가신 내 친정 어머니를 가장 안타깝게 생각 하신 이모 였다

언니는 왜이래 맨날 이래살어야해..

언니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징말...

사는게 청승맞은 내 엄마에게 이모는 마음이 아린 표정으로 

이모가 한마디 한마디 할때마다 이모의 입술은 마치 진달래 꽃잎이 잔바람에 흔들리듯 이모에 입술이 꽃잎 같아 윗목 내 나무책상에서 옆눈으로 이모를 훔쳐보곤 했다

그 둘째 이모는 나의 친정인 원주에서 옆에 산탓도 있겟지만 천성적으로 인정 스러운 이모는 어려운 우리집 살림을 걱정하며 이것저것 챙겨와 우리를 먹이셧다.

부대에서 남앗다고 가져온 노랗게 지진 두부의 고소한 기름 냄새는 아직도 내가 두부를 좋아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 둘째 이모는 우리집을 올때마다 빈손으로 온 적이 없는데 올때마다 희고 가는 손에는 먹거리 아니면 사촌들이 입었던 옷가가지들을 싼 보따리가 들려있었다.

이모가 가져온 옷보따리 속에는 나보다 한살 많은 사촌 언니가 입던 옷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햇던게 늘 어머니가 떠주신 쉐타나 도꼬리 아니면 아버지의 낡은 와이셔츠로 만들어 입힌 흰 원피스를 입어야만 했던 나로서는 화려하고 세련된 그 이종 사촌언니의 옷은 내겐 환상 그자체였다.

어느날 둘째 이모가 연한 주홍색바탕에 밤색 작은 점이 박힌저지천으로된  원피스와 같은 천으로된 목덜이를 목에 휘휘 감고 왔는데 그 이모의 모습은 마치 참나리 꽃 같은 이미지였다.

이모에 팔에 매달린 사촌 언니는 쑥색 멜빵 주름 치마에 오골오골한 레이스가 달린 블라우스에 깜장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나는 내가 이모의 딸이였으면 하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사촌 언니의 엷은 눈인사를 외면 한채 휙  뒤란으로 내빼서 애매한 항아리를 툭툭 차며 사촌 언니를 시기했었다.

세월이 흘러 우리집도 어느정도 안정이 찾아올 무렵에 어느날 이모가 옷보따리를 들고 오셨다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아하게 엄마와의 담소를 나누다 가셧는데.이모가 나가자마자.옷보따리를 풀어헤쳐 나는 그중  이종사촌 언니 옷을 찾아 북..뜯어 찢어 버렸다

먹고 살만 하니 이모가 가져온 보따리가 자존심이 상한 속이 얇은 내 행동이 지금 생각하니 배은망덕이란 말이 생각나니...

암튼 그 이모는 여차여차해서 20년전 한식집을 하시게 되었는데 이모의 외모에 손님들은

당시 날리던 배우 김지미를 비유 하며

김지미가 제일 이쁜 여자로 알았는데 김지미 능가하는 여자가 이곳에 있다니....

손님들은 이모의 외모에 혀를차며 카운터를 보던 내게 엄마냐고 묻은거였다.

어릴적  이모의 팔에 매달려오던 이종 사촌 언니가 나였으면 고생에 찌든 내 엄마가 이모고 이모가 내 엄마였음 사촌 언니를 투기 했었는데 그 손님의

엄마 시나..? 늘 꿈꾸던 이모의 딸이기를 바랫던 나는  그손님의 물음에 옆에 서있던 사촌 언니를 제끼고 내가 이모 딸이 된것에 그날은 입안에 박하사탕 물은 화...한 기분이였다..ㅎㅎㅎㅎ<지하에 계신 친정 엄마 아시면 눈홀기시겠만..>

그러다 이모는 뇌종양으로 돌아가시고 돌아가시기 6개월전 인천 모 병원에 입원 하셨다는 말을 듣고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나는 이모의 마지막 모습을 외면 했었다.

그리고 6개월후 이모의 별세소식을  들은것은 막 쇼핑센타에서 장을 보고 주차장으로 들어 서는데 서울 여동생의 한통의 전화가 걸려왓다.

언니..이모 어제 돌아가셨데..

응...그래.가실때 고생은 안하셨데니?.알았다..

담담한 조금전에 내모습은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발걸음이 떼어지지를 않아

나는 장본 봉투를 든채 움직일수가 없었다.

멍하니 철채 주차장 안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며 상념에 잠겼다.

어릴적 못사는 언니네 집에  군인 월급을 쪼개어 당신도 세아이를 키우면 쪼들렷을텐데.

누렇게 뜬 나를 위해 원기소다 옷이다 보리쌀이며 날랐을 이모.

참나리 꽃 무늬 저지 원피스에 학같은 긴목에 스카프를 맨 이모 모습이 어른거려

그런 이모를 인천까지 가서도 차시간을 이유로 그냥 내려와버린 무정한 내자신에.

나는 가책과 함께 아름다운 이모의 죽음을 주차장에서 멀거니 선채 들어야 했다.

참나리꽃을 닮은 둘째 이모는 그렇게 환갑을 조금 넘은 나이에 2년전 돌아 가셨지만.

내 암담하고 궁핍 했던 온통 잿빛 어린 시절 기억속에 그 이모는 유일한 칼라로 내마음속에

자리잡아 화려하고도 고운 색채로 채색되어 가끔 이모를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