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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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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정원


BY 소심 2003-10-15

    소슬바람이 불어 댄다.
    가을햇살의 따사로움이 있음에도 으스스하고 쓸쓸한 기운이
    대지를 감돈다.
    바람 따라 노란 은행잎들이 우수수 떨어 져 내린다.
    빨간 단풍의 작은 흔들림에서 살고 싶다는 마지막 생의 간절함을
    보는 듯하다.
    파란 잔디의 끝도 메마름으로 건조하고 잔디 위를 뒹구는 낙엽들의
    사각거림에서 조금씩 자연의 상실이 일어남을 느낄 수가 있다.
    풍요 끝에 오는 계절의 상실이다.
   
 
    가을의 끝에서
    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본다.
    늙어짐이라는 어휘가  자주 떠오른다.
    현재까지  살아 오면서 별반 아파서 자리에 누워 본적이 없었다.
    근데
    자주 근육통이 발생한다거나 어깨 결림이 심하다 못해 굳어지는 현상까지
    오면서 육신이 아둔함을 느낄 수 있어질 때 나의 삶의 나이는 가을이다.
    몸이 자꾸만 황폐하여 짐은 가을의 건조함과 다를 바가 없다.
    우연한 어깨 결림이 일주일 지나도 사라질 줄을 몰라 급기야는
    한의원에서 침과  물리치료로 육신의 치료란 것을 해 보았다.
    침이 나를 콕콕 찔러 대는 순간은 단풍잎의 생을 위한 발버둥인 듯하였고
    롤링이 육신을 위아래로 마구 흔들어 줄 때 그것은 소슬바람에 마구 흔들리던
    은행잎의 운명의 모습과 같이 느껴졌다.
   
    안마기가 나의 몸을 사정도 없이 두들겨 패줄 때 그것은 잔디 위에 나뒹구는
    비실 거리던 낙엽의 모습이 아니던가?
    가을하늘아래 메말라 가는 대지의 건조함은 나이 들면서 변하여 가는 나의 
    겉모습의 변화와 같음이다.
    가을의 정원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빛을 발하는 원숙의 아름다움에서 자연의 성숙을 발견한다.
    가을의 정원에서
    계절의 끝자락에 파생하는 바삭거림, 메마름과 건조함, 쓸쓸함에서 자연의 노화를
    발견하기도 한다.
    삶의 가을인 나의 계절은 성숙인가 노화인가?
    이듬해의 새싹의 싹틔움을 위해서 썩어 들어가는 낙엽의 모습은 자신의 소멸에서
    또 다른  생명력을 낳기 위한 영혼의 모습이다.
    내 영혼의 정원을 위한 나의 정원 돌보기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나?
    무기력이었나?
    우울함이었나?
    쓸쓸하고 외로움이었나?
    육신의 노화가 주는 서글픔의 감정 때문에 잠시 정원 돌보기가 게을러졌다.
    게으름이 영혼의 정원에 노화를 가져 왔다.
   
    새로운 싹틔움을 위한 썩어 들어가는 낙엽의 깨달음에서 노화는 또 다른
    성숙을 낳기 위한 순환임을 알게 된 나는
    육신의 아둔함을 탈피하기 위해 또 다른 도전의 숲으로 내달리고 싶다.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는 감정의 숲에서 헤어나기 위하여 영혼의 정원을
   가꾸어 가고 싶다.
   영혼의 정원을 가꾸기 위하여 쟁기와 갈퀴도 준비해야 하겠다.
   물뿌리개로 메말라진 영혼의 숲에  촉촉이 수분을 축여 가고 싶다.
   촉촉해진 영혼의 정원에서 아름다운 수필의 꽃들을 나만의 아름다운
   꽃들을 피우고 싶다.
   그것은 정녕 내 삶의 활력이요. 성숙의  길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