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는 데도 쌍살벌들이 베란다 창틀에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벌집을 지어놓으면 그 해는 부자가 된다는데" 생기기도 하고 정말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가져지니 말입니다. 무섭고 두려워 지기도 하는 두마음이 쌍살벌들의 움직임을 볼 때마 '조금 불편해도 벌집의 커기만큼 기다려서 부자나 되자' 어떻게 알았지? 영특하기도 하지 기특한 놈들 이러한 독백을 하면서 벌집을 감상할 때도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아니 기다리다 기다리다 부자 되려고 참다가 참다가 정말 부자 되고 싶어서 정말 그대로 두어야 겠다고 다짐 다짐 했는데. 벌들과 나의 인연이 뭐 대수야 모진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것으로 몇 달간의 벌과 나와의 인연은 끝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악하게 하지도 않았던 벌들인데 제거 해버린 점이 잘못이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애벌레에서 자란 쌍살벌들이 짝짓기를 하는 기회가 아닐 까 생각 해 봅니다. 자신만의 이기심을 선택한 나의 모습을 깨달아 봅니다. 더불어 살고 져 했으면 마음도 평화롭고 그리고 벌들이 주는 두려움에서 조심이라는 상황도 배울수 있게 될 터이고 그리고 자연의 풍경도 감상하면서 부자도 될 수 있었을 텐데 라구요.
벌들의 움직임이 없습니다.
황갈색의 벌들이 일렬로 붙어 모여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마 보금자리를 잃은 슬픔 때문인가 봅니다,
아마 봄이었나 봅니다.
비가 자주 내리던 여름날의 악천후에도 벌집들은 나날이 커져만 갔습니다.
벌집의 크기가 커감에 따라 나의 걱정도 커지기 시작 했답니다.
반면 은근히 욕심도 생겨 났습니다.
한마디씩 던져주는 사람들의 말에 은근히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벌들의 출현으로 부자가 되고 싶어 좋기도 하고 커지는 벌집을 보면
일어나곤 했습니다.
내면의 깔린 인간적인 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하고 많은 집들 중에 우리집을 선택해 주었다니 벌들이 내가 착한것을
그러던 마음이 간사함을 일으켜 마음이 뒤집어 지는 사태가 발생 했습니다.
자꾸만 커지는 벌집과 함께 많아 지는 벌들의 숫자에 그만 지레 겁을 먹게
된 것이네요.
벼루다 벼루다.
파리채와 파리약을 무기로 집어 들었습니다.
인정 사정 없이 파리약을 살포를 했습니다. 무자비 하게.
황갈색의 벌들이 시커멓게 이리 저리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도망을 갑니다.
'툭' 파리채로 열심히 지어놓은 쌍살벌들의 종이집이 제거 되는 순간입니다.
'이제 안 오겠지!'하고서 베란다를 살펴 보는 순간 크악 놀라움을 감출수가 없게
되었답니다.
집을 잃은 벌떼들이 베란다 창틀에 떼를 지어 옹기종기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갑지기 벌들이 불쌍해지면서 후회가 들기 시작 했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기다려 주어도 나에게 해를 입히거나
두렵다는 ...
무섭다는 나의 선입견으로 벌들의 보금자리를
지금 시기가 쌍살벌들의 산란기를 갓벗어나
시기라는 것을 벌들의 움직임을 보고서야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마음 먹었던 대로 겨울에 가서 제거 했더라면 벌들의 일생을 방해 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벌들을 보면서 태풍 매미로 보금자리를 잃은 수재민들이 떠 올랐습니다.
부모 잃은 어린 아이들도 떠 오르기 시작 했습니다.
벌들의 움직임을 보니 새로 집을 장만 하지는 못하는 형편 인 듯 합니다.
어쩌면 자연의 신비인데
좁은 인간의 소견으로 자연의 질서를 깨트려 버렸다는 것에 반성이 됩니다.
얼추 보아도 수십마리 는 되는데 추워지는 날씨에 어떡할 까 걱정도 됩니다.
아름다움을 선사하러
나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러
우리집 을 선택해준 쌍살벌들에게 내가 너무 잔인 했나 봅니다.
작은 곤충의 보금자리도 함부로 손대지 않음이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또 한번 배우게 된 산경험의 현장입니다,
축복이 감해지지는 않을 까 하는 염려스러워 지기도 합니다.
인간의 이기심이.....
벌들을 불쌍하게 만들어 놓고서도 자꾸만 자기위주로 생각해 버립니다.
곤충이나 동물을 통해서 깨달음의 지혜를 가질 수 있음이 또한 축복의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라고 우리 집을 찾아온 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