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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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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늘어놓는 이야기..


BY 모퉁이 2003-10-01

몇일 전에 만난 아는 동생의 차림새는 아랫단이 갈갈이 찢어져서

하늘거리는 치마에다 갈색톤의 셔츠가 참 예뻤다.

낮이라 그리 덥지 않아서 반팔차림으로 나갔더니 내 차림새가 무색하게도

거리의 사람들은 팔길이를 돌돌 말았을지언정 대개가 긴팔차림이었다.

'날씨가 아직 덥네' 하는 나에게 예사롭지 않은 한 마디는

갱년기라 몸에 열이 나서 더운 모양이라고 한다.웃었지만 그 말이 열나는건 어찌하리..

'그래..내가 갱년기란 말이지?'

사실은 날씨탓은 핑계이고 요즘 정말 마땅히 입을 만한 옷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쩌다 한 벌 장만해 놓으면 두번도 못 입고 계절이 바뀌는 바람에 다음해엔

영락없이 구제품으로 변해있어 외출이 잦지 않은 나같은 사람은 계절맞춰

날씨 기온맞춰 옷 찾아 입기가 까다롭다.그 중에 덧댈 이유 하나가 더 있다면

유행이나 스타일이나 패션에 민감하지 못함이 더 우중중하게 만든다.

 

점심시간 맞추어 잠시 만난 친구가 아주 발랄한 차림새로 나왔다.

내 스타일이라 고집하며 몇 년 째 일자바지에 단화를 즐겨신는 나는

어쩌다 찍은 사진조차 날짜 확인하지 않으면 몇년산 사진인지 헛갈린다.

머리모양이나 옷이 거의 비슷한 채로 몇 년이 되다보니 어떤 사진은 아래위

옷이 똑같은 사진이 연도만 바뀐채 저장되어 있기도 하였다.

가까이 찍는 사진에 거부감이 생기면서 배경이 중요하다며 인물은 가능한 멀리두고

찍는 요즘이라 옷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도 이유가 되겠지.

 

짙은 밤색 바지에 보라계통의 티셔츠를 입은 이 친구를 누가 마흔을 반이나 채운

중년여인이라 하겠는가.

바지가랭이에 달린 끈을 잡아 당기니 커텐처럼 주름이 잡히며 조화를 부리고

위에 입은 셔츠는 나일롱 섞인 쉐타 뜨거운 물에 담궈 쪼그라진 것 처럼 쭈글쭈글하다.

예전에는 이렇게 변한 옷 심란해서 못 입었는데 요즘은 되려 그렇게 쭈그러진 옷이

유행이란 이름으로 거리에 넘쳐난다.

 

항상 반듯하게 다림질 된 옷이어야 정갈하고 깔끔하게 여기던 예전과는 달리

적당히 구겨지고 접힌 것도 제대로 차리면 멋이 되었으니

유행따라 사는 것도 제 멋이라던 대중가요 가사를 빌리지 않아도

적당히 부린 멋은 사는데 기운이 되고,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멋이라고 해서 치렁치렁 달고 걸고 해야 되는게 아니라 자기만의 개성을 살려서

자기만의 색깔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나는 아직 거기까지 통달하지는 못했지만

나이에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이미지 변신은 이 가을에 눈가에 주름을 셀 시간 대신

주름이 생겨도 좋으니 양껏 웃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올 봄에 선물받은 스카프를 꺼내보았다.

어떤 옷에 어울릴지 몰라 옷장에서 두 계절을 그냥 보냈었다.

이 가을엔 더 늦기전에 나도 길다란 스카프 목에 두르고 가을 나들이 가고 싶다.

그러나,어쩌면 이것도 내 기분에 적어본 한낮 꿈에 불과할 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는 평소의 복장대로 스카프가 어울리지 않은 차림새로

이 가을을 네모난 공간에서 허우적대며 지낼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혹은 모르지.

어느날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머리 곱게 말리고,하늘이 너무 고와 눈이 시리면

나혼자 거울앞에 서서 긴 스카프 목에 두르고 나갈 곳은 없어도 마치 외출하는 사람마냥

휘휘 한바퀴 돌아보며 내 만족에 웃을지...

이렇게..호호호,,

아니면 소리없이 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