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기간 동안 얌전히 굴던 남편이 어젯밤 또 발작(?)하였다. 잘 어울리는 회사 건물 주인과 술잔을 기울인 것까지는 좋다.
내가 술좌석에 까지 가서 신신당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건만 이 사람은 열한 시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궁금하여 다시 술집에 가보았더니 이미 술값을 계산한지 오래되었단다.
새벽 네 시 전화벨이 울렸다. 안 받았다. 또 울렸다. 안 받았다. 이어서 잠시 후에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삼십대 초반의 왠 낯선 남자.
남편을 데리고 서울까지 대리운전을 했단다. 남편이 기다리라고 하여 기다리는데 싸움이 벌어지고 남편이 친구와 함께 어딘가로 사라지더란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왔으니 왕복에 대기시간까지 합한 요금 12만원을 계산하라는 것이었다. 돈이 없다고 하자 그 남자는 전화번호를 남기고 남편의 차를 끌고 가버렸다. 매번 음주운전을 하던 사람이 왠 대리운전! 나는 잠시 후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또 전화가 왔다. 남편.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니 택시값을 들고 아파트 앞으로 나오라는 말.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십 여분 지나서 남편이 돌와왔다. 운전사가 기다리고 있으니 돈을 달라는 것이다. 나는 돈이 없다고 하였고 큰 목소리에 놀란 시어머님이 방에서 뛰어나오셨다.
남편이 살림살이를 부술 기세를 보이자 어머님이 돈을 들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셨다. 이어서 남편은 듣고 싶지도 않은 전후 사정 이야기를 횡설수설 늘어놓는 것이었다.
회사가 세들어 있는 건물 주인은 두 명이다.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회사 건물을 놓고 날마다 재판을 벌인다. 남편과 잘 어울리는 아들은 빚을 많이 져서 핸드폰도 못 갖고 다닌다. 받을 돈도 많은 모양이어서 자신이 빌려준 돈을 받아줄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단다.
남편은 서울에 있는 자신의 친구를 소개시켜주었다. 친구를 만난 그 건물 주인은 한 턱 낸다고 룸싸롱에서 고급 양주를 마구 시킨 모양이다. 술값은 100만원이 나왔다. 그런데 건물 주인이 뺑소니!! 어쩔 수 없이 많은 술값을 계산하고 화가 치민 친구는 남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어머님이 뭐라고 한바탕 나무라시자 남편은 나는 원래 그런 놈이니 그런 줄 아시라고 하면서지친 몸을 침대에 부렸다.
어찌 술만 먹으면 사람이 이렇게 개망나니가 되는가. 걸핏하면 친구와 주먹다짐을 하고 말도 되지 않는 계획(!)을 늘어놓는다.
며느리 눈치 보랴 아들 눈치 보랴 바쁜 어머님은 오늘도 아파트 청소를 하러 출근하셨다. 어젯밤 "아빠가 혹시 때리면 자기한테 말하라고. 자기가 실은 아빠보다도 힘이 센데 져주는 거"라고 속삭이던 건빵은 오늘 아침 맥 빠져 누워있는 내게 학교간다고 보고를 하고 등교를 하였다. "미안하다"는 말만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출근을 안하니 아주버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난 할 말이 없다. 묻는 말에 "네!"라고 대답할 뿐. "우스운 자식"이라고 혀를 차더니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끊으시는 아주버님. 남편은 피 묻은 얼굴로 내쳐 자고 있다.
참으로 내 역량으로는 감당키 버거운 사람이다. 결혼을 함으로써 완전히 질과 격이 다른 함정에 빠진 것 같은 느낌. 어찌하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