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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카이-------------


BY 카이 2003-09-08

  행복한 김종삼 / 이면우   

 

하루 여객열차 세 번 서는 간이역
회덕역 앞 김종삼 약국 새로 생겼다
저녁 어스름이 띄운 연꽃 간판 아래
버스 잠시 멈췄을 때 생각났다

하늘나라에서 김종삼
다시 살고오라고 몰래 지상에 내려보내며

이번엔 좋은 시 읽기만 하고 오라
술보다 좋아하는 음악 종일 틀어놓고
가족 잘 돌보고 두루두루 신세 갚고오라

그래 간판도 무지 크게 달고
강 건너 먼데서도 아픈 이들
잘 찾아오라며 불도 이른 저녁부터
저리 환히 밝혀놓고

 

이 시를 읽노라니 나도 행복한 김종삼이 된 기분이다. 그래서 행복한 카이라고 제목을 달아본다.

이번엔 좋은 시 읽기만 하고 오라고, 시집 살 돈 없어도 인터넷으로 시인들의 시를 공짜로 읽을 기회를 주셨는가.

술보다 좋아하는 음악 종일 틀어놓으라고 우리집 라디오는 주방에, 안방에, 작은 방에 각기 1대씩 3대라, 식구들 없는 한낮에는 각기 다른 채널로 맞춰놓고 변덕부려 가며 듣는가.

가족 잘 돌보고 두루두루 신세 갚고 오라고. 열두 살 난 아들을 어느 날 갑자기 선물로 주셨는가.

시어머님도 덤으로 얹어주셨는가. 골칫덩이 큰 아주버님도 보너스로 주셨는가. 모두 내가 전생에 진 신세를 갚아야 할 사람들인가.

행복한 김종삼에 비하면 나, 갚아야 할 신세는 턱없이 보잘 것 없는 것. 간판까지 무지 크게 달고 강 건너 먼데 있는 아픈 이들까지 챙겨야 하는 김종삼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두루두루 신세를 진 사람일까.

나는 그에 비해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한 카이. 이렇게 인터넷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행복한 카이.

그런데 시인이 본 김종삼이 아니라, 김종삼이 본 김종삼은 행복한지 묻고 싶어진다. 김종삼씨를 만날 수 있다면 말이다. 행복한 카이는 왠지 별로 행복하지 않은 것 같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