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바싹 다가오니 여기저기서 너도 나도 돈 타령을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초등학교 오학년인 우리 아이도 돈 타령을 한다. 갑자기 귓전에서 "어--머니!" 소리가 들리면 나는 긴장한다. 아이가 평소에는 엄마라고 부르다가 돈을 달라고 할 때에는 "어-- 머니"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할 때는 "하알 --- 머니"라고 할이라는 음절을 길게 끌다가 머니라는 두 음절은 짧게 발음한다.
얼마 전에는 사회 공부를 하다가 부처님을 석가모니라고도 부른다고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녀석은 석가머니로 잘 못 알아듯고 석가 ---- 머니하더니만 대뜸 ,
'엄마! 석가머니가 무릎 위에다 손을 얹어놓고 엄지와 검지를 붙여서 동그랗게 하잖아. 그거 돈 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
무슨 큰 발견을 한 것처럼 으스대며 말한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만 나온다.
시인도 돈 타령을 한다.
들깻잎을 묶으며
- 유홍준
추석날 오후, 어머니의 밭에서
동생네 식구들이랑 깻잎을 딴다
이것이 돈이라면 좋겠제 아우야 다발
또 다발 시퍼런 깻잎을 묶으며 쓴웃음 날려보낸다
오늘은 철없는 어린 것들이 밭고랑을 뛰어다니며
들깨 가지를 분질러도 야단치지 않으리라
가난에 찌들어 한숨깨나 짓던 아내도
바구니 가득 차오르는 깻이파리처럼 부풀고
무슨 할 말 그리 많은지
맞다 맞어, 소쿠리처럼 찌그러진 입술로
아랫고랑 동서를 향해 거푸거푸 웃음을 날린다
말 안 해도 뻔한 너희네 생활,
저금통 같은 항아리에 이 깻잎을 담가
겨울이 오면 아가야
흰 쌀밥 위에 시퍼런 지폐를 척척 얹어 먹자 우리
들깨 냄새 짙은 어머니의 밭 위에 흰 구름 몇 덩이 머물다 가는 추석날
동생네 식구들이랑 어울려 한나절 푸른 지폐를 따고
돈다발을 묶는, 이 얼마 만의 기쁨
텃밭에서 온 가족이 모여 깻잎을 수확하는 정겨운 풍경이다. 그런데 그 퍼런 깻일에서 시퍼런 지폐를 연상한다. 갑자기 쓸쓸해진다. 현실적인 고달픔을 이헣게 시적인 여유로 이겨내고 있는 그 누군가가 느껴진다. 시인이라는 멀고 먼 존재가 아주 가깝게 느겨지는 순간이다. 냉장고 속에서 짜디짠 간장에 젖어있되 아직 숨이 죽지 않은 나의 깻잎들도 돈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남편은 한달간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가 요 며칠 다시 출근하고 있다. 아마 월급은 못 받게 될 것 같다. 사장인 아주버님의 마음에 달려있다. 돈 백만원이라도 주시면 얼마나 고마울까만. 내 남편이 저질러 놓은 일이 있으니 입도 뻥끗 못한다.
아이의 돈타령은 코믹하고 재치있다. 시인의 돈타령도 왠지 풍요롭고 따사롭게만 느껴진다. 나의 돈타령은 청승스럽고 궁상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