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한다.
그래도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아주 안하고 후회 하는 것 보다는 낫다나.
얼굴도 기억 안나는 어느 아줌마의 말이다.
몇년 전 친구가 일하는 미용실에 사십정도로 보이는 아줌마가 보조로
들어왔더란다.
월급은 원장님이 주고 싶은 대로 줘도 좋으니 그저 기술이나 가르쳐
달라고 사정을 하더라나.
사연인즉슨 신랑이란 위인이 신혼 때부터 가정을 등안시 하는 바람에
새끼들과 먹고 사는 문제가 등을 짓누르더란다.
궁여지책으로 소싯적에 미용학원을 나온 완전 초보 실력으로
동네 방네 돌아다니며 한사람당 1만원씩 받고 손이 부르트도록
야매로 빠마를 하고 살았는데
막상 가게를 개업하려고 보니 자신의 실력이 너무 초라해 배워 가겠다는 거였다.
야매다 하니까 꼴같잖은 여편네들까지도 자기를 무시하는 통에 서럽더란다.
그래서 큰맘 먹고 적금 분 것 찾고 해서 손바닥 만한 가게라도 얻어
번듯한 간판을 달겠다는 게 그녀의 꿈이었더란다.
원장 입장에서야 월급은 쥐꼬리도 안되는 월 30만원에 튼실한 아줌마를
부리게 됐으니 마다할 까닭이 없었더란다.
그야말로 그 알량한 기술을 전수한답시고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시켜도
군말이 없었다니.
조금만 힘들면 철새처럼 호로록 날아가 버리는 요즘 젊은 것들에 비할까 싶었으렸다.
한 6개월이 지났나.. 그녀가 드디어 개업을 했더란다.
축하 인사차 가루비누 한통 사들고 찾아간 친구. 놀러갔다가 얼떨결에 따라간 나.
그녀의 가게를 보고 우리 둘은 할말을 잃었다.
국도변에 위치한 그녀의 가게는 사방이 논밭이었고 하루종일 바람을 가르며
씽씽 달려대는 차들만 그득한 변두리중에서도 상 변두리였다.
그녀 말로는 저 너머에 집이 여러채 있고 조 앞에도 몇 채 있고 해서
이 동네 손님만 잘 잡아도 먹고는 살겠더라나.
손님 대접한다고 휴대용 렌지에 끓여내온 라면을 먹으며 사실은 시내에
가게 얻을 돈이 없어서 싼데 알아보다가 여기까지 왔노라고 그녀가 말했다.
아무튼 초라하든 어쨌든 간에 그녀의 작은 소망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친구와 나는 올망졸망한 자식들과 힘겹게 사는 그녀가 고생 끝 행복 시작이길
바랬고 당연히 그렇게 될 줄만 알았다.
왜, 번듯한 간판이 달린 그녀만의 가게가 생겼으니까.
어찌하다 한참 후에 그 근처를 지나다 또 들를 기회가 있었는데
웬 잘생긴 사내가 고장난 샴푸대를 손 봐주고 나가는 거였다.
묻지도 않은 말에 그녀가 먼저 계면쩍은 얼굴로 우리 신랑이라고 했다.
얼굴만 봐서는 남자가 한참 밑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 인물이 간판보다 더 번듯했다.
'돈 푼 좀 벌면 귀신같이 알고 찾아와 홀랑 가져가 놀음하고 기집질 하고
며칠전에는 가게 계약서까지 들고가서 담보 잡히고 놀음했어..'
화 낼 줄도 모르는 듯 마치 남 얘기처럼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 눈빛을 보니
안타깝기 이전에 화가 났다.
공연히 아무 상관없는 우리가 길길이 흥분을 하며 당장 갈라서라고 떠들어
댔다. 우리는 그녀가 같이 맞장구를 치거나 할 줄 알았는데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게다가 아주 잠깐 서먹한 표정이 스치는 게 아닌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친구가 그랬다.
'남의 부부 문제는 끼어 드는게 아니라는데 괜한 소릴 했나봐...
우리 눈엔 한심하게 보여도 그 아줌마에겐 더없이 소중하고 차마 헤어질 수 없는
뭔가가 있지 않겠니?'
그 말에 내가
'뻔지르르한 그 얼굴만 봐도 좋은 건가?' '밤일을 기똥차게 잘하나?'
친구, 별소릴 다 한다며 나를 꼬집어 대고.
우린 별 시답잖은 소리를 지껄이며 그 휑한 국도를 달려 나왔다.
부부란 무엇일까.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고 말로는 설명이 안되는
오묘한 관계가 아닐까.
그렇게 속을 썩으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아이들 때문에? 아니면 이혼녀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온전한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간절한 바램?
언젠가는 남편이 자신의 수고와 노고를 알아주고 정신 차리고 돌아 올까봐?
그것도 아니면 단지 잘생긴 남자라서?
집안에 속 썩이는 사람 없으면 맥 풀려 일찍 죽을까봐?
호적 더러워 지는 거 겁이나서? 이혼 하면 어디 갈데 없어서?
가정은 필시 두 사람이 만나 협동해서 만들어 가는 공간이 아니던가.
어느 한 쪽만 노력하고 희생하는게 과연 참다운 결혼이라 할 수 있는지.
그렇게라도 사는게 결혼을 안하는 것 보다 하는 게 더 좋은 이유가 될 수
있을지. 왜 맨날 아줌마만 희생해야 하는지...
난 도무지 그 수수께끼를 풀 수가 없었다.
그 후로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국도를 달리다 보니
개업 때 번듯했던 간판은 그녀의 삶 만큼이나 빛바랜 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유리벽면엔 예전 그대로
'최신 컷트, 퍼머, 올림 머리, 스트레이트, 염색'
얼룩 덜룩한 글씨들 위에 먼지만 뽀얗게 앉은 채로 그 휑한 도로변에 변함 없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