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정,미란,희숙,경진.혜옥 서영 ...!
우린 언제부턴가 6총사였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여중시절부터인데 그때는 각각 다른반에서
그리그리 친하면서 소히 학급에서 비중있는 일들을 맡아 하면서
적당히 친했던거 같다.
본격적으로 친하기 시작한것은 좀 멀리 떨어진 여고를 같이 진학하면서부터였다.
그래도 그근래 고장에서 명문을 택해서 진학한다고해서
함께 시험을 치루고 모두 합격을 했다.
우리의 여중은 잘 다듬어 지지 않는 신설 학교였다.
여중이 없는 시골 마을에 저 멀리 현해탄 건너 우리 고장 출신
재일교포들이 많은 기부금을 보내와 설립된 학교였다.
운동장은 울퉁불퉁 거리고 제대로 학교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았던....
그렇지만 아담하고 이쁜 희망이 있는 그런 학교였다.
나는 어릴적부터 몸이 약해 차멀미를 무척했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가까운 새 여중에 입학하게 된것을
몹시 불만스러워 했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난 감사에 감사를 한다.
그 여중을 입학하고 졸업하게 된것에 말이다.
그 수 많은 추억....!
추억속에 그녀들..선생님들..사건들..
지금도 우린 만나면 얘기가 끈이질 않고 입은 헤~벌려져 있다가
집에 올때 쯤 제 모습대로 돌아오며 낄낄거린다.
하나하나.. 한편한편..
교정은 새로운 모습으로 우뚝 우뚝 솟았고..
우리들의 손놀림과 열정으로 운동장은 편편하고 보드라운 흙으로
다듬어져 갖고 봄이면 노오란 아름다움을 감싸 안도록 학교 울타리는
개나리로 단장을 했고 운동장 한모퉁이는 곧고 정직함을 상징하는
대나무...도톰하고 하얀 예쁜꽃이 피면서 멀~리까지 향기가 풍겨져 오는
치자나무...각종 일년초들...
학생들, 선생님들..모두 내집처럼
갈고 닦고 늦게까지 환경정리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곳에서....그곳에서 우리는 숙녀들로 발돋음하였고
말똥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었고 운동장을 배회하며
비를 추적추적 맞아가며 어설픈 무드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학급문집을 만든답시고 밤마다 이친구집 저친구집 우르르 몰려다니며
친구집 고구마나 축내고 재래식 화장실 오줌통에 한 다리가 빠져
지릿냄새를 풍겼던 그친구를 칠칠이란 별명을 붙여 지금까지도
추억의 도마위에 올려 잘근잘근 씹어 제친다.
포송포송 볼기짝에 살이 오르고 원하지 않는 여드름이 하얀 얼굴에 피면서
우리들은 3년을 보냈고 삼삼오오..혹은 혈혈단신..
각 가정의 처지에 따라 원하는 여고로 진학을 하게 되는
여중 졸업을 맞았다.
섭섭해서 서운해서 너무나 오붓하게 한집식구처럼
여중시절을 보내서 선생님이고 우리들은 눈물바람 콧물바람을
하고 헤어졌었다.
몇몇 애들은 서울로 진학하였는데 그때 정순이도 이미 늙으신엄마와 오빠들이
서울로 이사를 먼저 가서 살고 있는터라 서울행 열차를 타고 우리와 헤어졌다.
그런후,
몇번의 편지와 한번쯤의 만남이 있었고....
정순이와 우리들은 수십년동안 소식을 모르고 살아 갔었다.
그리고 효정이 미란이 희숙이 경진이 혜옥이 서영이는
그곳 동부쪽 어느 여고에 함께 진학하여
징글징글하게 뭉쳐 다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