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커피를 앞에 두고 창을 바라볼때가 많다.
비오는 창안에서 식은 커피를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쓸쓸하지만
내 버릇이기에 야릇한 행복도 있다
텅빔속의 허망한 고독...
그러다보면 기분이 풀리때가 종종 있다.
아랫세상을 보면서
사는 게 별거 아닌데...
빈몸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건데...
하루가 가면 다시 내일이 오는건데...
그러다보면 살아지고 살아내고 살게되는거지.
그러다보면 좋은 날도 햇볕 찬란한 날도 오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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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머스마가 급하게 초인종을 누른다.
나도 급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머스마 손가락엔 달팽이 한마리가 앉아 있었다.
오다가 잡았단다.
아주 크다고 한다.
두 개의 눈이 튀어나와 낯선 우리집을 정신없이 보는 달팽이.
달팽이 집을 어디다 만들어 주냐고 묻는다.
작은 화분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머스마는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고 난리다.
먹을 걸 줘야한다고 그런다.
토마토를 한입 베물어 주었다.
토마토는 안먹고 화분밖으로 기어 나온다.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려고 애쓰는 줄 알지만
"달팽이야 그래도 소용없다.너는 우리 머스마 손에 잡혀서 이제 우리 식구다.
포기하고 화분속으로 들어가라.안그러면 길을 잃고 말라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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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도 어제와 비슷한 흐린창을 만났다.
오늘도 어제와 비슷한 일상으로 오전을 보내고 오후를 만난다.
내일 친구들이랑 광화문으로 응원을 가려고 약속을 했다.
막내 머스마랑 같이 가려고한다.
머스마는 내일 시험이다.
그래서 지금 책상에 앉혀놓고 난 감독관이 되어 쳐다보고 있다.
시험이란 제도를 우리 인간이 만들어 놓고
우린 인간이 진절이를 치고 지겨워하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
시험이란 감옥에 우리 인간을 가두어 두고
우리 인간이 탈출하려하고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고 시험이 없는 세상을 동경한다.
머스마는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움직인다.
머스마는 연필을 떨어트리고 지우개를 찾는다.
머스마는 멍청하게 천장을 보고 고개를 흔들고 머리를 감싸쥔다.
머스마는 그래도 뭔가를 쓰고 지우고 다시 쓴다.
그리고 "다 했어요"한다.
아직은 저학년이라 문제집 하나만 풀면 90점이상 맞는다.
중간고사로 그랬는데..
내가 물어보니 대부분이 90점이상이란다
평균 80점이하는 몇명안된다고 한다.
문제도 쉽지만 가정에서 교육열이 높아서 학교 시험정도는 한마디로 적당히 식은 피자 먹기인가보다.
머스마는 또 달팽이를 들여다 본다.
화분 밖으로 나온 달팽이를 손으로 집어 화분속으로 넣으면서 하는 말.
"화분 밖에서 자고 있었나봐요. 딱 달라 붙어서 안 떨어질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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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엔 비가 그쳤나보다.
아니 잘 모르겠다.
잠시만 창아래를 내려다 보고 오겠음.
비가 정말로 그쳤다.
사람들이 우산을 쓰지 않고 빈 몸으로 걸어간다.
그러니 비가 안오는 게 분명하지 않은가?
내가 보는 시야에서 세상은 촉촉하다.
세상은 평화롭고 조용하다.
세상은 평등하고 아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