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녀언니네 집으로
팔랑개비처럼 팔을 휘휘 젓으며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노래를 부르며 뛰어갔다
분꽃이 골목어귀서 부터 피어있는
점녀언니네는 대문 앞에 터밭이 있고
터밭 한가운데쯤 바가지로
퍼낼수있는 작은 우물이 있다
가끔은 소꼽놀이를 할때
그 우물곁에 소담스럽게 피어난
토끼풀꽃으로 시계도 만들고 반지도 만들고
지천인 참비름나물 을 뜯기도 했다
방학이면 이웃한 점녀언니네서
나보다 대여섯살 많은 언니랑
실뜨기 하며 노는게 얼마나 재미있던지
틈만나면 달려가곤 했는데
요며칠 언니표정이 썩 밝지 않아
오늘은 위문공연차 씩씩하게
팔랑개비팔을 휘저으며 대문으로 들어섰다
'언니야, 아직도 기분이 안좋나"
마루끝에 새초롬이 앉아있는 점녀언니는
여늬때와는 달리
반기는 기색이 없다
언니네 아버지한테 꾸중을 들었나 싶어서
이럴때 가장 좋은 단방약은
내노래지 싶어
한창 유행이던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한곡을 나름대로 율동을 하며 혼자 신나게
불렀다
다른때 같으면 언니도 따라서
마당에서 나하고 보조를 맞춰
노래하고 춤추고 하는데
언니는 자꾸 담장너머 먼산만 바라보고
한숨만 푹푹 내쉰다
언니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바로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인데
난 별로 그노래를 좋아하진 않지만
평소 언니가 좋아하던 노래라
위로차 불렀지만 심드렁한 반응에
나도 맥이 풀어졌다
오늘은 실뜨기도 못하겠고
언니가 수놓는 풍경도 보지 못할 모양이다
'언니야 김상사님 한테서 편지 안왔나'
분명 저렇게 상심이 깊은건
월남의 김상사님의 편지때문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말한건데
언니는 푹 무릎에 고개를 꺽고
훌쩍이기 시작한다
김상사는 언니가 잡지에서 보고
펜팔한 사람인데
월남에 있다고 했다
자주 편지가 오고 언니도 바지런히
답장을 보내고
언젠가는 사진이 왔다면서
정글속에서 군복을 입은
김상사님의 사진을 내게 보여주며
자랑하던 언니였고
언니도 시내 사진관에서
나를 데리고 가서
사진을 찍어 보낸다면서
가장 예쁜 웃음을 짓고
나무잎 모양에 언니 얼굴이
들어간 사진을
정성스레 보낸것을 봤다
올가을쯤 김상사님이
월남에서 돌아온다고 좋아라 하던
언니였는데
그래서 김추자노래를 참 좋아했었는데
아무래도 뭔 일이 있는것 같았다
'언니야 뭔일인데'
자꾸 귀찮게 묻자
'암것도 아이다 니는 아직 모린다'
언니는 손을 털어내며 우물이 있는
터밭으로 털래 털래 나갔다
갑자기 허망하고 공허해졌다
'니 는 암것도 모린다'
이말이 언니랑 나 사이에
건너지 못할
큰 내 를 하나 만든것만 같았다
언니가 그날은
나하고는 다른 세계에 살고있는
사람같았고
언니의 그런 행동이
매일 실뜨기 하면서
놀았던 점녀언니라는게 믿기지 않았다
만만해서 항상 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던
내 가 갑자기 딴사람이 된듯한
언니에게서
예전에 보지못한 또 하나의 언니 모습을 보게되었다
갑자기 슬펐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심란했다
가장 가까이 지냈던 나도 모르는 사실들이
그 후
며칠지난 어느날
동네아이들 입으로 입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펜팔하던 김상사가 신발을 거꾸로 신었단다'
신발 거꾸로의 의미를 그때 까지 몰랐던
나는
그게 뭔 대수냐고 반문하다가
아이들에게 놀림 을 당하기도 했다
그말이 배신이란 말과 동일하단걸 알고부터
한번도 보지못한 김상사가
나도 미워졌다
언니가 한동안 웃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그런 언니가 김상사 노래를 부르는 것 을
이후에는 본적이 없고
더불어 나도 담장너머 언니에게
들려준답시고 목청껏 부르는 일 도 없어졌다
둘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아직도 나는 모른다
다만
그 언니는 이년뒤
다른 사람과 중매로 시집을 갔는데
구식결혼을 한 언니는
언니네 마당에서 쪽두리를 쓰고
원삼 치마저고리를 입고
연지곤지 찍고 시무룩하게
있던 모습만 기억난다
고향떠난지 30여년
그 언니 소식을 아직 듣진 못했지만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노래만 들어도
점녀언니가 생각난다
언니와 정담을 주고 받던
김상사님도 ,점녀 언니도,
이젠 흰머리 희끗 희끗해진
모습으로
옛추억을 기억이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