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몰랐지만 열번도 더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꿈속을 헤매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맘에 들지 않는 멜 열고 멜 답 쓰다가 톡톡 튀며 말 재간을 뿌려대는
여자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그런데 자꾸 맘은 길 잃은 아이처럼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쇼파 한구석으로 지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자릴 옮겼다.
그때 핸드폰 메세지가 왔다는 울림이 들렸고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읽었다.
'' 내 멜 읽고 빨리 답해줘. ''
참 지극히 정없고 말라빠진 메세지 였다.
급하면 전화하는게 낫지.. 겨우 미련 버리고 멜 닫았는데 또 멜을 열어보란다..
제목엔
'' 오늘 영화보러 가자.. ''
그리고 시간 위치 등등 꼭 알아야 할 정보만 찔러대고 내 멜을 기다린다고
했다..
어거.. 뭐야.. 병주고 약주나..
내가 영화 보자고 할땐 내 맘 다 뒤집어 대더니 이젠 왠일이냐구..
오늘만 살고 낼은 안 살건 아니구..
암튼 난 쏘아붙일 말도 찾지 못하고 불쌍하게 몇달째 망가져버린 다리땜에
사람들이 그리워서 OK 단추를 눌렀다.. 그리고 뭔가 궁금해졌다..
늘 우리가 만나는 날엔 날씨가 어둡고 무거웠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늘 따라붙었고 ..
어제밤 꿈속을 헤매느라 머리는 무겁고 맘은 어둡고 쓸쓸했던 후유증땜에
어쩌면 반가웠을지도 모를 애매함으로 외출을 서두르고 있었다..
한시간이나 일찍 도착해버린 나의 무지함과 어리숙함을 한심해 하면서
내가 집에서 갇혀 지낼동안 사람들은 변함없이 이렇게 살고 있었다는 모습들이
내 시야에 순서없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겨워 하면서 내 다리와는 반대로 손잡고 인라인 타는 사람들을
맘 아프게 잘라내느라 기다리는 시간내내 버거웠다..
난 언제 다시 저렇게 되냐구.. 아.. 죽겠다..
아직도 맘이 정리가 안되고 있었다..
아직 약속 시간은 남았는데 결혼행진곡 음악이 날 깨웠다..
'' 어디야? ''
'' 난.. 아까 왔었지.. 어디? ''
'' 거기루 와..''
'' 알았어.''
늘 그랬지만 만나는 그 한순간이 늘 어색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시간에 맞춰 영활 보려면 좀 서둘러야 했다..
미련스럽게도 그날은 덥지도 않았고 오히려 선선한 가을 같았는데 난
어깨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민소매 옷을 입고 있었고 불쌍하게도 추워서
떨고 있었다..
'' 너.. 옆에가서 반팔옷 아무거라도 사자.. 너 춥지? ''
'' 싫어.. 싫다구..''
영화관으로 들어서는데 이번에 입술까지 떨렸다.. 다행히 담요를 갖다
주었다..
영화는 나도 오랫만 이었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매력있게 날 끌어 당기지도
못했다.. 그런생각 땜에 거북한 맘이 들었고 왜 하필 오늘 영활 보자고
했을까 하는 궁금함에 향긋한 맥주만 빨아대고 있었다.. 그때..
'' 너 닮았다..''
여자 주인공이 막 등장하자 옆에 앉은 남자가 그렇게 중얼댔다..
'' 하나도 안 닮았다..''
'' 이미지가 닮았다구.. ''
'' .. .. .. ''
'' 저기 앞에 앉은 세쌍만 아니었어도 이거 내가 다 빌린거라고
했을텐데.. ''
후.. 또 거짓말 같은 발상이네..
그냥 웃었다..
근데 참 멀게 느껴지는 그 남자한테 내 한구석에서 쓸쓸해지는
뭔가가 불편했다..
영환 생각보다 무섭지도 않았고 오랫만에 해후한 이 남자가 더
무서웠다..
그리고 ..
나란히 택시타고 자유로를 달릴때도 난 예전처럼 떠들수도 없었고
종알댈수도 없었고 그냥 바람부른 머리카락만 만져대고 있었다..
나 먼저 내리면서 다리가 부어올라서 아파오는게 부담스러웠다..
또 넘어지면 난 그날로 끝이라는 조급함땜에 발을 조심스레 끌어당기며
걷고 있었다..
'' 차 한잔만 사줘..''
'' 여기 싫어하잖아.. 뭐 마실건데.. ''
'' 저거 뭐야? ''
막 새로 오픈한 맥주 소주 간판을 보고 들어가서 옆 테이블에 있는
손님한테 내밀어진 자몽소주가 신기해서 그것으로 주문하고
난 또 추워서 떨었다..
'' 재밌는 얘기 좀 해봐..''
'' 없어..''
'' 환자들 얘기라도 해봐.. ''
'' 또 병원 얘기니? ''
오랫만에 해후한 두 사람이 이렇게 마주앉아서 자몽소주만 마셔대야
하는게 억울했다.. 억울하다고 막 맘속에 접어두고 있는데
'' 그만 일어서자...''
'' 오늘은 나보고 사달라고 했으니깐 이거 내가 낸다..''
'' 그래..''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벨 누르고 기다리는데 이게 마지막 일것
같았다.. 두사람 오늘 만나서 뭐 한거야?
'' 우리 노래 부르고 가자..''
'' 안돼.''
'' 너도 안되잖아..''
늘 넌 나랑 많이 다른것 같아.. 하면서 날 밀어내는 그 남자한테 마지막
말은 하지 말것을 하는 후회가 막 치밀어 올랐다..
'' 그럼 먼저 저기로 가.. 난 이리로 갈께..''
민망하고 억울하고 창피해서 난 황급히 돌아섰다..
뭐 그러냐.
내가 얼마나 우스워졌는지 알기나 하는지..
장화 홍련처럼 그날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니 꿈에서 내가 장화 홍련이
되어서 번갈아 가면서 날 볶아대고 있었다.. 영화만 아니었어도 그날 내
무너짐은 없었을텐데.. 하는 말도 안되는 기막힘에 내가 아니고 싶었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