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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와...나와...


BY 새봄 2003-07-26

기차를 탔습니다.
순전히 기차를 타기 위해서 종점까지 가는 표를 끊었습니다.

간이역은 간이역만의 풍경과 냄새가 있습니다.
간이역엔 육교도 없고 지하도도 없고 화려한 불빛도 없고
어릴적 외갓집 집집마다 피어있던 꽃들만이 한 줄로 나란히 서 있습니다.

기차안은 옛날 그 모습이 아닌
하얀 와이셔츠에 빨간 넥타이를 맨듯 도회적 이였습니다.
시청앞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탄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정갈하고 편리했습니다.

기차가 다음 정거장을 향해 출발하면서 속도를 낼 때서야
기차는 기차만의 소리를 내면서 어둠속을 부리나케 달렸습니다.

기차는 탈춤 추는 소리를 냅니다.
기차안에서는 그 장단에 맞춰 어깨가 들썩거리고 종아리가 가볍게 흔들립니다.
기차가 달리는 특유의 소리와 몸짓 속에는
과거로 과거로 달려가게 하는 초인적인 힘이 있습니다.

라디오에서나 찻집에서 흘러간 가요나 팝송을 간간히 들으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가슴 애잔한 추억이 동그랗게 생기듯...
기차는 과거로의 우물속으로 나를 추락하게 합니다.

춘천행 기차를 타면 차창밖의 풍경에 나를 조용히 내려 놓습니다.
비슷한 하루하루가 식상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밀어내거나
방랑끼가 풍선처럼 부풀때면 춘천행 기차를 탔습니다.
혼자 일때는 홀가분함으로
둘이 되면 애틋한 감정으로
셋 이상이 되면 주둥이가 들떠서 강가를 돌아 돌아 기차 여행을 떠났습니다.

첫사랑 때문에 꽁꽁 묶여 버린 남쪽행 열차.
영원히 못만나는 평행선이 되어 버린 기찻길.
"비내리는 호남선 남행 열차에...잃어버린 첫사랑도 흐르네~~"
그 인간이 배신을 때릴 때,
이 노래 부르는 년놈들 마이크를 내동뎅이 치고 싶었는데......
지금은 옛노래가 되어 엉덩이를 흔들며 같이 따라 앗싸앗싸거립니다.
"빗물이 흐는당께......내 눈물도 흘러부려...아따~~~그 년의 사랑 징혀여 잉~~~"

문산까지 갔다가 막차를 타고 출발지였던 백마역에서 내렸습니다.
백마역엔 키다리 해바라기와 해바라기 옆에
봉숭아 꽃이 붉게 피어 날 유혹합니다.
봉숭아 옆에는 장난감 나팔같이 생긴 분꽃이
역장님께 야단맞을까봐 조용히 입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는 루드베키아라는
러시아의 어느 고장 이름을 연상케하는 꽃이
오고 가는 사람들을 샛노란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왜 떠나야 했는지, 왜 보낼 수 밖에 없는지는 기차에겐 책임이 없습니다.
기차는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언제든지 날 기다려 주었으니까요.
기차표 한 장 들고 여행을 떠났던 가난했던 춘천행도
그 시절이 그리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고 올라탔던 남행열차도
씁쓸하고 들적지근한 상흔만이 시골꽃처럼 한 줄로 서 있던 백마역도
내 삶의 주요한 부분이였습니다.

기차가 달리땐 탈춤 추는 소리가 납니다.
"덩더궁 덩더궁......덜쿵 덜쿵......쿵덕쿵 쿵덕쿵......"
사는 것이 일장일단이 있는 법.
오늘은 짧은 괴로움과 긴 행복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