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에서
소 잡아 먹었네.
눈이 온다고 북장구를 치다가 잠이 든 뻥새야.
새벽길이 환하구나. 엄마 가슴의 무거움과는 비례되는 훤한 길닦음이 사뭇 조심스럽다. 이제사 생각나고 깨달아 지는 것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길이 살얼음판 같다는 게야.
언젠가 함께 길을 걷다가 말했듯이 살얼음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안다고 고개 끄덕일 수 없는 것이 살얼음판이란다.
얼음판처럼 보이는 그 투명 유리같은 곳에 발을 내딛고 싶어 하고 그 위를 걸어보고 싶은 유혹을 누군들 느끼고 싶지 않으리.
엄마가 안보는 사이에 슬그머니 갖다 대던 네 신발코가 있었느니라.
물론 가만 두었지.
으악 하고서 어쩌고 저쩌고 고시랑 대는 거야 네 몫이였겠지만
신발을 대신 바꿔 신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뭐....고시란히 네 몫이었지.
바깥을 다녀온 엄마가 귀를 부여잡고 한동안 문지르던 거 본적 있지?
다름아니라 엄마 귀가 동상에 걸렸거든. 글쎄 언제 걸렸는지는 모르겠고...
너희들이 밑바닥이 단단하게 잘 덧붙여진 신발을 신고 밖엘 나갈때는 엄마는 문득 문득 엄마가 너만 했을때로 넘어갔다 오곤 했단다.
편지를 나르는 외삼촌은 발에 동상이 걸려서 참 오랫동안 외할머니가 가슴아파 하셨는데 지금은 다 나았을까.
검정고무신이였을 때 ,파란 색 나이롱 신발이였을 때
너랑 엄마가 즐겨보던 최 민식님의 사진집 "종이 거울 속의 슬픈 얼굴"에서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잘 생긴 사내애가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엇비스듬이 서 있던 흑백사진 .
그 아이가 입고 있던 떨어진 나이롱 윗도리를 보고 그랬을게야
나이롱 옷이 떨어질 정도면 얼마나 많이 내림내림 입었을까. 하고.
나이롱이라고 쉽게 불렀지만 나일론이었지.
그 신발은 절대 떨어지지도 않았단다.
지난번 산에 갔을 때 눈에 찍혀 있어서 만났던 반들반들한 신발바닥보다 더 반들거렸을 나일론 고무신을 신고 눈오는 날 학교에 갔다 와선 모두다 그렇게 입을 모았더란다. "소 몇마리 잡아 먹었는데"?라고.
눈길위에서 몇 번 넘어졌느냐는 소리였단다.
기본이 열마리는 넘었었지. 고무신을 신고 발길이 나지 않은 눈길 위를 사분거리고 걷다가도 어느 사이에 퍽 넘어지고 사람들이 걷는 눈사람이 되었을 때니까.
지지난해 늦가을 관악산에 갔을 때 낙엽속에 파묻혀 걷던 네가 그때 소 몇마리 잡아 먹었더라? 도토리를 끄집어 내듯이 낙엽속에서 너를 끄잡아당겨 털 털 털곤 했느니까.
엄마가 목장을 한다면 어디 그만한 소로 운영을 하겠느냐고 이 산 어드메쯤에 코뚫은 소 묶어두고 가자고 했던가.
목에 풍경도 달아놓자고 했던가.
소 한200 내지 300마리는 되어야 목장입네 하지 네가 잡은 소 여닐곱마리로 어디 목장이나 하겠니 했었겠지.
누나만 아니면 오늘은 산길을 좀 다녀왔음 좋겠다.
거기 네가 묶어두고 온 소들도 코뚜레 빼고 놓아주고 목에 걸린 풍경도 떼어주고.
그 풍경일랑 엄마 목에 걸고 싶구나.
눈내린 숲속을 뻥새의 손을 잡고 걷는 그림이 그새 보여진다.
참 아득하다.
주말이 끝난 아침 발걸음이 다들 더디겠지.
꿈을 꾸어본다.
눈길 위를 흔적없이 달려가는 바람으로 化한 에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리는 마음과, 그 마음을 잡고 있는 붉은 반점의 발진을 신비의 손으로 어루만지는 꿈을.
날개옷을 입은 선녀가 아이들을 팔에 안고 두둥실 치솟는 얼굴이 떠오른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꿈이냐.
거기 아름다운 꿈 사이로 고무신에 새끼를 묶어서 장사를 하러
가시던 내 어머니가 문득 보인다.
아, 이 까닭없이 내리는 눈물.
얼마나 발이 시려웠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참 고생많으셨던
그 시대의 모든 내 어머니들.
새벽 눈밭에서 떠도는 마음을 붙잡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