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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접속*****


BY 전도연 2001-10-11

잘못된 접속

얼마 전까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영화중에 한석규씨와 전도연씨의 주연의 <접속>이라는 영화가 있었다.영화관에 가는 일에 게으른 나는 결국 되늦게서야 비디오 대여점을 통해 그 영화를 봤다.

영화는 컴퓨터의 대량 보급이라는 시대의 변화를 발빠르게 반영하고 있었고 바로 그 점이 대중의지지를 불러 일으킨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였다.이 시대에 인터넷과 PC통신은 남녀의 만남을 위한 놀랍고도 신비한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을 이 영화에 대해 나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마디로 염려가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PC통신이나 인터넷 같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남녀의 만남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퍼뜨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환상이 현실 속에서는 크나큰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바로이 문제야 말로 많은 여성들과의 상담을 통해 내가 직접 체감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자 ??문에 우는 여자들은 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과거나 현재나 달라지지않은 모습이지만, 사이버공간에서의 잘못된 접속으로 인해 우는 여자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분명 이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통신을 통해 남자를 만나 채팅을 하고 (심지어 모닝콜까지 받고, 점차 가까워지고 결국 직접 만나 성급한 성관계까지 하고 나서 후화하는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사이버 만남의 현실인 것이다.
사이버 공간을 통한 만남은 익명성을 보장한다. 그 익명성은 통신을 하는 쌍방에게 심리적으로 자유로움을 주게되고 그것이 이른바 채팅의 매력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만남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그 본질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러한 만남의 위험성을 피해가기 어렵다.
막연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 특히 여자와 남자가 만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부터 생각해 보기로 하자. 어느 찻집에서 남녀가 처음 만나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시각적인 면에서는 우선 서로의시선이 오가고 상대의 얼굴 모습이나 표정을 살핀다. 그옷차림, 몸의 움직임, 사소한 손놀림을 관찰한다.
대화를 하면서 말의 내용도 듣지만 동시에 말하는 사람의 음성과 어투와 말에서 퐁겨지는 미묘한 뉘앙스까지 알아챈다.
어떤 채취가 풍겨오는지 처음 만난 개들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맡지는 않지만 은영중에손을 잡는다면 그 손이 따뜻한가 축축한가, 긴장되어 있는가 피부는 부드러운가 등등을 느낀다. 미각? 처음부터 미각까지는 곤란하겠다. 그러나 만일 관계가 진행이 되어 입맞춤을 하게 된다면 미각도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모든 동물이 낯선 상대와 만날때 보이는 반응이다.
나보다 힘센 놈인지 아닌지,전의를 보여야 할 것인지, 꼬리를 내려야 할 것이지를 온 감각활동을 통해 상대가 말하고 있는 말 이상의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모든 동물이 낯선 상대와 만날때 보이는 방응이다.
나보다 힘센 놈인지 아닌지, 전의를 보여야 할 것인지,꼬리를 내려야 할 것인지를 온 감각을 동원하여 탐색하는 것이다.인간사회에서는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이 탐색 능력이 보다 복잡다단해지고 섬세해져 왔다.
상대가 폭력적인 사람인지.이기적인 사람인지 소심한 사람인지, 겁쟁이인지,거짓말쟁이인지.... 모든 경우를 판단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상대가 나에게 이로운 사람인지 해로운 사람인지를 가려내기 위한 최초의 본능에서의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 있다.
그런데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러한 본능적 감각을 발휘할 수가 없다.
직관은 커녕, 시가도 청각도 촉각도 후각도 미각도 아무런 감각기관도 동원할 수 없는 만남이다. 말하는 사람의 표정도 볼 수 없고 필채도 알 수 없다.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오직 말 그 자체의 의미만을 전달받을 뿐이다. 그 말의 진실성 여부를 알아차릴 수 있는 모든 다른 수단들이 원천봉쇄된 상황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성이 보장된, 오로지 전자 활자만을 통해 안 상대방은, 다분히 실제 그 사람과는 다른 하나의 환상이거나 허구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평소에 하지 않는 일탈된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얼굴도 내 이름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 곧 익명성은 사회적 규범과 책임을 강요하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뜻하고 이 해방감이 곧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대화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특소한 상황에서 나누는 말들이란 일종의 가면무도회와 같다. 자신의 얼굴이 가려졌으니 아무렇게나 말해도 책임지지 않을 수 있고 그러다 보니 웬지 평소와는 다른 엉뚱한 행동을 해보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런줄도 모르고 상대방의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대화하면서 환상을 키우게 되고 그러다가 드디어 직접 만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면 그야말로 위험한 상황이 되기 쉽다.
마치 환상과 현실의 경계선상에서 혼돈에 빠져 비틀거리는 정신분열적 상태가 된다고 할까. 자신은 상대를 오랫동안 알아왔고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것이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환상이란 현실 속에서 ?틴沮?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환상을 쫓아 행동하다가 돌이 킬 수 없는 여러가지 실수를 한 이후에야 번뜩 정신이 드는 것은 대개 여성들의 몫이다.
그것은 마치 오색 영롱한 무지개 빛을 발하며 둥둥 떠다니는 비눗방울을 잡으려다가 손에 닿자마자 ,펑,하고 터지고 말았을 때, 당황하여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아이와 같다고 할까, 이미 너는 내 여자나 다름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철면피하고 음흉스러운 남성을 경험하며, 여성들은 자신의 순수함과 어리석음을 땅을 치며 후회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지고 만 이후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만남이 반드시 좋지 않은 결말로만 끝을 맺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만남에서 출발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려 가고 있는 모범적인 커플이 있는 것도 실제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피해사례를 접하면서 내가 느낀 점은 , 사이버 만남, 조심하라! 그것은 아무리 조심해도 결코 지나친 법이 없다'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만남은 진정한 만남을 위한 하나의 계기가 되고 출발점이 될 수 있을 뿐이다. 환상과 허구일 수도 있는 이 만남을, 만남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착각해서는 결코 안된다. 바로 이것이 영화<접속>의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내게 떠오른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