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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茶)이야기.


BY 빨강머리앤 2003-07-19

올 장마는 별 이렇다 할 특징이 없이 지나가나 했습니다.

오히려 얌전한 아이마냥 이쁘게도 지나가는구나 싶었습니다.

적당히  비가 내렸고, 비가 내리면 다음날은 풀잎에 이슬 몇방울을

남기고는 푸른하늘과 함께 하얀 뭉게구름 까지 띄운 맑은 날을 보여주곤 했으니까요.

 

비가 내려서 끕끕하다 싶으면, 빨래가 안말라서 걱정이다 싶으면

다음날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서는 뽀송뽀송하게 빨래를 말려주고 실내 습기를

조절해 주어서 올 여름장마가 곁에라도 있다면 한번 쓰다듬어 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그랬는데 엊그제 부터 비가 상당히 많이 쏟아집니다.

어제아침, 오늘 아침은 무섭게 비가 쏟아져서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적잖이 걱정스러울 정도였지요.

지금은 다행히 비가 조금씩 뿌려집니다만, 아무래도 여름이고 장마철이고 보면

많은 양의 비가 내리기도 할거라고 긴장을 해라는 의미로 받아 들입니다.

 

아침에 꽤 많이 쏟아져 내리던 비가 잠시 소강상태입니다.

그래서 여느 아침처럼 커피를 한잔 마시고 다시 주전자에 찻물을 올렸습니다.

오늘은 왠일인지 녹차를 한잔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서요.

통상, 우리가 '차'라면 어느때부턴가 '커피'를 이르는 이름이 되어 버렸습니다만,

엄밀히 말을 하자면 커피와 차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커피는 일회성이지요.물을 끓이고, 커피를 넣고 설탕과 프림을 넣어

타는 커피지만 그건 일회성 입니다.

식기전에 다 마셔 버려야 하는 음료 다름아니지요.

 

녹차는 커피와는 다르게 느림의 미학이 있는것 같습니다.

물을 끓이고, 끓인 물이 알맞게 식어서 차가 우려나기 좋을 온도를

맞춰야 하고 머그잔이나 보통의 커피잔하고는 다른 도자기잔을

준비를 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엔 한템포 느림의 미학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다도'라는 말의 의미도 그렇습니다.

차를 마시는데 대한 예의라... 어쩐지 그말엔 쉽게 범접할수 없는

무게감마저 느껴집니다.

게다가 저는 다도를 얘기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수준입니다만,

그래도 차를 사랑하는 마음하나로 심오한 차의 세계를 넘겨다 보고 싶어집니다.

 

오늘 끓인 녹차는  지난 봄 섬진강 주변을 여행하면서 보성 차밭에 들렀다가

보성 어디 차를 가꾸는 사람들의 조합에서 만든 차를 사온 것입니다.

보성차밭에서 녹차를 사오기 전까진 그냥 일회용 태백으로 만든 차를

마셨댔지요. 일회성일수 밖에 없는 티백차는 깊이 있는 맛을 전해 주진 못했습니다.

원래 녹차는 알맞은 온도의 물을 부어 우려 내면 녹색으로 우러나야 그게

진짜 녹차라지요?

요즈음이야, 우리 재래종 차는 귀해서 우리같은 사람들은 쉽게

구할수도 없다고 하고,사실은 우리가 마시는 녹차라는게 일본산 녹차잎이라고 합니다.

우리 토종녹차는 농약과 비료가 필요없다고 하지요.

야산에서 홀로 자라서 초봄에 여린 잎새를 틔워내서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정갈하게 해주는게 전통차랍니다.

일본산 녹차는 비료를 해주어야 잘 자란다고 합니다.

물론 벌레 먹지 말라고 농약도 친다지요.

 

알맞게 우려낸 녹차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셔야 합니다.

커피처럼, 훌훌 마실수 없는 녹차는 그 식어가는 온도에 따라

음미되는 맛이 달라짐을 느낄수 있습니다.

비록 제대로된 다기세트를 갖추어서 마시는 차는 아니지만,

녹차잔에 한번 우려낸 녹차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시다 보면

마음이 어쩐지 정갈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은 녹차를 마시게 되는것 같습니다.

특히, 오늘같이 조용히 비가 내리는 날은 차를 마시는 분위기랑

더할 나위없이 어울립니다.

 

이건 차를 즐기는 차원과는 거리가 있겠지만

여름이라 물을 끓여 먹게 되는데 녹차를 넣어서 물을 끓이곤 합니다.

녹차로 끓인 물은 보리차 보다 쉬이 변하지 않습니다.

녹차가 지닌 약리작용을 살펴보면

온가족이 녹차끓인 물을 상용하는 것도 좋은 습관이라 생각 됩니다.

 

녹차가 다 식었습니다. 다시 한번 물주전자를 올려야 겠습니다.

라디오에선 대금연주가 애잔하게 울려 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