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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아줌마의 팔방미인 강박증(?)


BY wwfma 2001-01-12


내가 아줌마라고 하는 말 뜻에는 전업주부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어쩌다보니 이젠 버젓이 직업 난에 주부라는 항목도 생기고, 세상이 바뀌어 결혼을 하고도 직업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필수가 되어 버렸지만 원래 아줌마란 아무런 사회적 직함이 없는 결혼한 여자를 별달리 부를 말이 없어 생긴 이름이 아니던가?

아뭏든 나는 그런 의미로 아줌마란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
가끔 의사나 교사 그 밖의 직장 여성들이 결혼을 했다는 의미로 '저도 아줌마예요.'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사이비 냄새를 지울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는 순종 아줌마다.

그런데도 순종 아줌마란 주장에 켕기는 구석이 없는 게 아니다.
순종 아줌마라면 몇 가지 떠오르는 영상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팔뚝이 굵어야 한다. 모든 잡다한 집안 일을 도맡아 해내는 무지한 노동력을 보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알뜰해야 한다. 시장에 가서도 좋은 생선을 고르기 위해 비린 냄새를 마다 않고 제 손으로 골라 손질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볼품보다는 당연히 실속을 우선해야 하고 절약을 위한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부지런해야한다. 가족의 생활과 건강의 파수꾼으로서 항상 최선의 노력으로 자기 몸의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등등의 전설적인 아줌마 상이 저절로 내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그러면 나는 누구일까? 나는 그냥 보통 아줌마라고 해두는 게 낫겠다.
어쩌다 보니 결혼해서 살림은 하고 아이도 키우고는 있는데 경제력을 갖추어줄 직업만은 가지고 있지 못한 보통 아줌마...

그런 보통 아줌마가 요즘 갈등에 휩싸여있다.
김치 담그는 게 번거로워 사먹고 싶을 때,
이제 더 이상 아이들에게마저 절대적인 존재 가치가 희미해질 때,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의 공부를 미리 결심한 만큼 돌봐주지 못했을 때,
별 일이 없었는데도 아이들 간식이나 식사를 충실하게 만들어주지 못했을 때,
하루 종일 나가서 일한 남편을 위해 실한 건강 식품은 커녕 바가지만 잔뜩 긁게 될 때,
고단해서 뻐근한 등을 이부자리에 누이면서도 웬지 모를 죄책감으로 오늘 하루를 떳떳이 보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이 놈의 아줌마란 직함을 벗어 던지기 위한 꿈을 꾼다.
해도 해도 완벽이란 있을 수도 없는 아줌마가 해 내야할 그 수많은 일거리를 정당하게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나만의 직업이 있고 그 것에서 약간의 경제력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겠기 때문이다.

전업주부란 얼토당토 않는 직업은 도무지 전문성과 경제성을 인정받지 못하므로 모든 잡다한 일들을 모조리 잘해내야 하는 팔방미인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일이다. 생활의 일정부분을 포기하더라도 한 가지를 잘하면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다른 직종과 달리 전업주부란 이름의 아줌마들은 그 전문성만을 제외한 모든 생활을 잘해내야만 그나마 눈감아줄 수준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불평등하고 불만족스러운 직종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해서 오늘도 꿈꾼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아직도 해내지 못한 그 수많은 역할과 일의 굴레에서 가위눌리며 불편한 잠자리에 드느니 한가지만 똑 부러지게 잘해서 남에게도 인정받고 여타의 생활에서의 미진함이 정당화될 수 있는 그런 직업을 가질 수 없을까 하고.

생활이 곧 직업이라는 것은 휴식과 카타르시스가 없는 형벌이다.
전업주부이기에 음식도 잘해야하고 집안 구석구석이 유리알 같아야하고 아이들 공부도 세심하게 신경 써 주어야 하고 집안 대소사에 항상 주도적이어야 하고 알뜰해야 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하고 온 가족의 깔끔한 입성에서부터 영양 상태까지 빈틈이 없어야 가히 직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아차 했다가는 더부살이 천덕꾸러기가 되기 십상이다.

나는 진짜 보통 아줌마일 뿐인데 그 굴레는 너무도 어마어마하여 오늘도 팔방미인이 되지 못한 하루를 반성하며 비굴한 눈치와 자아비판을 곁들이는 저녁을 맞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