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I로 조작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거르는 방법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49

나는 이렇게 죽고 싶다


BY eami48 2003-07-15

       

              나는 이렇게 죽고 싶다

 죽음!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길,
 그런데 우리는 아무도 그 길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꼭꼭 감추어 두고 절대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 주위에서 누군가가 예정도 없이 그 길을 갔다는 말을 들으면 '아, 저럴 수도 있구나' 잠시 생각을 하지만,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절대 나에게는, 내 가족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최면을 걸고 때로는 '그런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지었을거야' 그런 엉뚱한 생각으로 몰아가고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그런 일들은 쉽게 잊혀지고 또 일상에 매달리는 우리들의 모습,
 

 언젠가부터 종교단체라든가, 신입사원 교육 같은데서 죽음을 경험해 보기 위해 관에도 들어가 보고,

 유서도 쓰게 하기도 하지만,

 그 마음이 별로 오래 가는 것 같지 않다.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네 일상은 매일 매일의 삶을 생각하기만도 너무 정신이 없기 때문일까?   
 

 그러나 우리가 매일 매일의 삶을 계획하고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 것처럼 자신의 죽음도 그 계획 속에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 인생의 목표가 계획대로 실천되는 확률이 얼만큼인지 사람마다 모두 다르고 특히 죽음이라는 것은 자신의 계획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아무 준비 없이 당하는 것이 너무 허망하지 않을까? 
 

 본인도, 남겨진 사람들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주위에서 종종 보게 된다. 
 

 물론 아무리 준비를 한다고 해서 그 일이 새 집으로 이사를 간다거나, 직장을 옮기는 것 같이 간단한 문제일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이렇게 정신없고 예상치 못한 사고가 많은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래도 어느 정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죽고 싶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희망사항이지만 나는 적어도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고

 내 삶의 모습들을 정리하고 싶다.   
 

 나는 내가 죽기 전에

 얼마간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한달, 아니 일주일, 아니 어디까지나 내 희망사항이니까 적어도 일년 쯤이면 가장 행복할 것 같다. 
 

 그 일년 동안 나는 여행을 하고 싶다.
 육십이 눈앞에 오는 동안 나는 여행을 한 적이 없다.
 아니 결혼 전에는 등산을 좋아해서 가끔 산에 다니기도 하고 휴가 중에 여행을 가기는 했지만 암튼 결혼 후의 내 생활은 친구들 만나는 일도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행이라는 것은 그저 신문이나 방송에나 나오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아 왔었으니까,
 

 허긴 작년에 큰 딸이 결혼을 하고 사위 덕분에 서울 근교에 드라이브 라는 것도 가보고, 여름에는 태안반도, 겨울에는 동해안을 다녀 오기도 했지만, 편안하고 느긋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 동안 남편과, 자식들과, 때로는 친구들과 느긋하고 여유 있게

 하늘도 바람도 나무도 산도보고 바다냄새에 묻혀 어린 시절을 돌아보기도 하면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어둠이 내리는 밤하늘에 별도 세고 싶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람들, 내 가족, 형제, 친척, 친구, 이웃등,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싶다.

 

 나에게 잘해주었던 사람, 잊을 수 없는 사람,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면 만나보고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미워했던 사람,
 나를 미워했던 사람,
 내가 상처를 준 사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그들과의 문제를 돌이켜 보고 싶다. 
 

 내가 그 사람을 왜 미워했을까?
 그 사람은 나를 왜 미워했을까?
 나는 왜 상처를 받았을까?
 나는 왜 상처를 주었을까?
 그리고 그들과 화해하고 싶다. 
 

 나를 이해하고 용서해주기를 부탁하고, 내가 잘못한 것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에게도 나의 옹졸함을 인정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손을 잡고 향기 좋은 차를 마시고 싶다.

 

 그 다음 가장 힘들지만 꼭 하고 싶은 작별은 내 가족들이다.
 남편, 자식들......

 그들과 함께 지난 일들 돌아보며 즐거웠던 시간을 기억하고 함께 웃고 행복해 하고,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 잘 참고 견디어냈던 것 감사하고,
 서로 마음 아팠던 시간, 다시 생각하며 서로 위로하고 안아주고,

 그리고 내가 떠나고 난 뒤에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이해하며 살아 가라고 당부도 하고 싶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 아직도 내가 해 줄 일이 많이 있다는 생각, 그것은 욕심이고 이기심이다. 
 

 내가 떠난 뒤 가끔 슬프고 그리움에 목이 메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그 그리움이 삶을 더 아름답고 너그럽게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비가 오면 빗줄기 속에서,
 바람이 불면 바람 속에서,
 새싹이 돋을 때, 꽃 이 필 때, 눈발이 휘날릴 때,
 향기 좋은 커피를 마시며 나를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 장례식은 아주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오열과 절규 같은 것은 듣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성가와 나를 위한 기도와 연도를 들으며,
 나를 알았던 사람들이 조용조용 나를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따뜻한 차와 예쁜 모양의 떡이나 과자, 그리고 잘익은 과일을 먹으며 내가 옆에 있는 것처럼 담소를 나누고, 기도를 하고 노래를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조위금 같은 것은 절대 받지 말 것이며,

 나를 위해서 내 가족들이 나와 작별하는 이들을 위한 잔치를 마련하고,
 그들은 나를 위해서 남겨진 내 가족들을 위해서 자신들이 믿는 종교대로, 종교가 없으면 그저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내 자식들도 거추장스러운 상복 같은 것을 입지 말고 그저 검은 색 정장을 입고, 편한 마음으로 나를 보내 주었으면 좋겠다.
 

 힘들고 고달펐던 세상 짐 내려놓고

 비로소 안식을 누릴 수 있는 내 평화를 위해......  
 

 내가 부리고 싶은 가장 큰 사치는 리무진을 타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가끔 농담삼아 내 딸들에게 말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좋은 차를 타고 떠나고 싶다. 
 

 살아서 자가용 이라는 것도, 내가 꼭 가지고 싶은 것, 비싸고 좋은 것을 가져보지 못한 아쉬움을 그렇게 누리고 싶은 참 부질없는 욕심인줄은 알지만 단 한 번 그런 사치를 누리고 싶다.   
 

 장례 미사때 내 관위에 꽃 한 송이씩 올려 주고,

 그저 한 줌 재가되어 어느 성당 납골당에 내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

 가끔 가끔 나를 기억하고 나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다녀가며 세상사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면 나는 행복하게 웃으며 그들을 안아 주고,
나를 잊지 않고 있는 마음을 감사하고 싶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는 어디든 함께 갈 수 있고, 함께 있을 수 있고, 내 영혼은 그들과 함께 그들의 삶 속에서 살았을 때보다 더 많이 그들을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