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는 호수가 있다.
비록 인공호수지만 잔잔한 물을 볼 수 있고 저 쪽 한켠에는 자그마한 자연호수도 있어
딱딱한 시멘트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휴식공간이 된다.
사람이 드문 평일 오전에 가면 정말 몸도 마음도 넉넉한 시인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이 호수공원에서는 아이들 학교행사가 자주 열린다.
호수가 있어 우리 마을 이름도 호수마을이고 아이들 학교 이름도 호수초등학교이고,
학교 음악회 이름도 호수 음악회이다.
호수 음악회는 가족 합창제 이름이다.
매년 열리는 음악회인데 그 때는 동네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러나 아이가 고학년이 되고보니 나도 게으름도 생기고 또 집안일도 밀리고 해서 올해 열린 음악회는 가질 않았다.
저녁무렵 시작된 음악회는 어둠이 제법 짙어질 때까지도 끝나질 않았는지 둘째가 좀처럼 집에 들어오질 않는다.
저녁상도 물리고 난 뒤 아이를 찾아 호수로 향했다.
드문 드문 걸어오는 아이들 모습도 보였는데 친숙한 얼굴이 없어 나는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다.
드디어 아이친구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단번에 찾을 수 있을만큼 반갑게 나타난다.
몇몇이서 같이 오는데 둘째아이는 미리 갔다면서 자기들은 뒷정리까지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걸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은 길거리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말걸다가 졸지간에 낯선사람으로 분류되어
황망한 느낌을 갖게 될 때도 있다.
그 날도 역시 아이들 일행에 섞여 말걸기를 시도한다.
남자아이 셋,여자아이 셋이었는데 잘 모르는 아이들에겐 한명씩 이름도 물어보며 이런 저런 대화를 유도했다.
그러나 아이들에겐 내가 좀은 귀찮은 어른이었나보다.
잠시 대답을 하다가 말고 다시 자기들끼리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니는 옆에서 아이들끼리 주고 받는 이야기에 얼마간의 호기심을 갖고 귀를 기울인다.
좋아하는 가수들 이야기를 하는데 아마 서로 좋아하는 기호가 달라서인지 이견이 생겼나보다.
그런데 말의 내용을 들으려던 나는 아이들이 내뱉는 말 중에 고운 말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그들끼리 통하는 은어와 비속어,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욕 중 가장 험한 욕까지 섞어
서슴없이 내뱉고 있는 것을 듣게 되었다.
옆에 친구 엄마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질 못했나,아니면 그걸 의식하고 더 열을 뿜으며 저런 말들을 하는가 싶을만큼 아이들은 너무 거침없이 좋지 않은 말들을 하는 것이었다.
여자 아이들은 더 심했다.얼굴을 보니 참 맑고 예쁜 아이들이었는데 정작 자신들은 그런 말이 나쁘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심코 듣기만 할 수는 없어서 내가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데 어느새 아이들은 햄버거집에 간다면서 저만치 뛰어가 버렸다.
집에 돌아와서 내 아이에게 물어보았다.너도 그런 말들을 친구들끼리 거침없이 하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안그런 아이가 하나도 없다고 대답한다.
어느정도는 황폐해지는 언어생활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어린 아이들의 그 맑은 얼굴,맑은 목소리에서 실려나오는 너무나 색깔이 다른 거친 말들을 직접 대하니
정말 심한 배신감이 들기까지 할만큼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도 인터넷에서 사람들과 조금씩 교류를 해 보았다.
처음에는 정확하고 바른 말만을 고집했는데 어느새 나 또한 내가 인정조차 않으려 했던 말같지 않은 말들을 쓰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오히려 내가 고집했던 정확한 우리말만을 구사하는 분에게선 딱딱하고 정감없는 느낌을 받게 되었으니 나의 나름대로 가져왔던 우리말에 대한 소신도 너무나 허무하게 시류에 따라서란 변명을 대며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아이들이 내뱉는다고밖에는 표현하지 못할 그런 비속한 표현들은 그네들의 영혼까지 황폐화 시킬 것만 같고 나는 이제서야 내 아이의 말에도 결코 큰소리 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말속엔 그 사람의 향기가 있다.
바른 말까지는 욕심이라면 그래도 악취를 뿜어내는 말만큼은 저 맑은 아이들의 예쁜 입에서 못 나오게 막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한 힘으로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자칫하다가는 세상이 구역질나는 냄새로 진동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