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7718 | 추천:0 | 조회:6 | 날짜:2003/07/08 16:26:39 |
안전지대로의 도피 B> 1966년 수상작품 1960년대 중반, 베트남 전쟁이 한창 치열할 때 UPI통신사의 사진기자로 종군한 사와다 교이찌는 전쟁의 와중에서 신음하는 베트남 국민들의 처참한 실상을 촬영했다. 이 사진은 그 중의 하나로 퀴논 부근에서 월남인 어머니와 어린이들이 미군기의 폭격을 받고 있는 마을에서 탈출, 필사적으로 강을 건너는 긴박한 상황을 포착한 것이다. 죽음의 공포 분위기가 감도는 전장속에서 안전한 곳으로 도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몸부림과, 강인한 모성애가 휴머니스틱하게 표현된 이 사진은 사와다에게 1966년도 퓰리처상을 안겨 주었다. 사와다는 그후 사진의 주인공인 모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몹시 궁금해 했다. 전선을 차ㅊ아 1년을 해메던 끝에 그는 그 주인공들과 극적인 상봉을 했다. 비교적 평화롭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 그는 퓰리처상의 상금을 몽땅 털어 약 1년분의 생활비를 쥐어 주고 행운을 빌어 주었다. 사와다는 그후 미군을 따라 종군하다가 1970년 캄보디아 전선에서 전사했다. 피묻은 그의 종군기자증이 그의 시체 옆에서 발견되었다. 한 장의 역사적인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 전쟁터에서 활약하다가 죽은 사진기자는 많이 있었다. 그러나 사와다처럼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멋진 사진기자는 없었을 것이다. 1942년 퓰리처 사진 부문상이 제정된 이래 세 명의 일본인 사진기자가 수상을 했다. 그 중 한 사람인 사와다는 그의 사진과 함께 생생한 역사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사이공식 처형』 B> 에드워드 T. 아담스 , 1969년 수상작품 1968년 2월 1일, 사이공 서부의 초론 지역에서 취재하고있던 AP통신사의 아담스는 손을 뒤로 묶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간부가 사이공 정부군 해병대와 경찰에 체포되어 연행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뒤쫓아가자 지프가 멈춰서 있고 그곳에는 남베트남 국가경찰장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관은 연행되어온 남자가 바로 앞에 서자마자 허리에 찬 권총을 뽑아 남자의 우측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 충격적인 길 위에서의 처형장면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은, 그때까지 베트남 전쟁을 정의의 싸움이라고 간주하고있던 미국의 여론을 반전으로 돌아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녀의 절규 현콩 닉 웃 ( Hyun Cong Nich Ut ) 전쟁의 아픔, 전쟁의 고통, 전쟁의 비극을 이 한 장의 사진만큼 실감나게 말해 줄수 있을까? 베트남 공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거리로 밀려나온 민간인들, 그 중의 한 소녀가 불타는 옷을 찢어 던지고 벌거벗은 몸으로 공포에 떨며 울부짖으며 내달리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1972년 6월 8일의 일이다. 베트남 육군은 트랭 방에서 수도로 이어지는 1번 국도를 탈환하기 위해 사흘 동안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베트공의 저항이 완강하자 남부 베트남 공군의 지원을 요청했다. 공군의 전폭기들은 트랭 방으로 이어지는 1번 국도 위를 저공 비행하며 빗자루를 쓸듯이 공격해 왔다. 세상을 온통 녹일듯이 불비가 쏟아져 내렸다. 판 틴 킴 퍽이라는 사진 속의 소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이탄으로 불바다가 되어 버린 마을에서 벗어나 달려나오고 있었다. 이청리 모임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