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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생가.


BY 빨강머리앤 2003-06-29

가고싶은 곳이 있다는건 그만큼 가슴에 \'그리움\'을 품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석으로 이사오고  가고싶은곳 여러곳중에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이

\'다산생가\'였다.

모르긴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중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물이 다산 정약용일 거란 생각을 한다.

나 역시도 역사인물중 다산을 존경해 왔던 터라,

아이들이 그분의 위대한 점을 알고 존경했으면 싶어

다른 위인전 보다 다산 정약용에 대한 위인전을 몇권 구입한 터였다.

그랬으므로 예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현\'(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다산생가가 있다는 걸 알고 반가운 맘부터 앞서

내 이사를 가자마자 다산생가 부터 들리리라 결심을 했었다.

 

 

대한민국에서 드라이브코스로 가장 아름답다는 북한강변을 끼고 달리는

강변국도는 비가 와서 더욱 멋스러웠다.

강물이 바로 옆에서 찰랑이는 모습이 만져질듯 가깝게 느껴졌고,

요며칠 계속해서 내린비로 흙이 있는 곳이란 모두 초록 풀들로 뒤덮혀

목하, 녹음의 계절이 연출되고 있는 강변국도는 장마철인 관계로

차창밖으로 다소 서늘한 바람까지 불어와 거의 완벽한 나들이 길이

되어 주었다.

 

소담스런 접시꽃을 피우고 있는 작은 화단을 가진 정겨운 토담집모양의

찻집을 지나, 유럽의 성을 본뜬 카페를 지나고 비를 맞고 늦은 하지감자를

캐고 있는 농부들의 밭을 지나 북한강 물줄기를 한참 따라가다

남한강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지나서

드디어 \'다산 정약용생가 공원\' 에 도착했다.

 

다행히 비가 와서 관람객이 많지 않아서 우린 여유롭게 생가며 그 주변경관을

돌아볼수가 있었다.  홍수로 유실되었다가 삼십여년전에 복원한 생가건물은 그런대로

옛스러워 어딘지 그분의 손길이 느껴질것도 같았는데 생가를 둘러싼 주변의 건물들은

지나치게 현대적이고 인위적이어서 어딘지 정감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정약용이\'다산\'으로 강진에서 산 18년간의 유배생활은 500여권의 책을 쓰고 틈틈히

독서를 하느라 보낸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절정기이자 고난의 세월이었다면,

유배가 해제되고 돌아온 남은 일생을 보낸 고향마현에서의 생활의

그의 말년의 호, 여유당처럼 여유로운 여생이었다고 전해진다.

다산일때의 정약용과

여유당일때의 정약용이 어쩐지 그의 호와 관계가 깊은 것처럼 느껴지는건

제작년 여름 강진의 다산초당을 본 느낌과 마현의 다산생가를 둘러본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 탓일것이다.

다산초당에서 만난 정약용은 어딘지 고고하고 높은기품을 지닌

선비다름아닌 분으로,문화적인 향기가 아직도 다산초당 곳곳에서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었던 반면,

다산생가에서 만난 정약용은 그이미지가 애매하게 다가오는 듯 하다.

생가 복원을 너무 인위적으로 꾸민 탓이지 않나 싶다.

 

다산생가를 ,사실은 여느 관광지에서 보았던 한옥을 닮은  그 집을 한참동안이나

둘러보다 다산선생이 잠들어 계신 묘소에 참배했다. 소나무가  묘소 주변에 둘러 서있어서

솔향기를 은은히 풍기는 곳에 아담하게 누워 계시는 그분의 무덤앞엔

이렇다할 눈에 띄는 비석은 없었지만, 무덤앞에 나란히 돌장승 두개가

서 있는 단아한 모습에서 오히려 그분의 살아생전 그 고고한기품이 느껴져서

한참동안이나 그 주변을 서성거려 보았다.

비가 내리는 탓이었는지 오늘 따라 소나무가 품어내는 솔향기가 그윽했다.

 

다산문화관에 소장되어 있는 몇점의 책들, 목민심서, 흠흠심서, 경세유표... 등등을

만나고 나오는 길, 다산으로 살아가던 그때를 재현한 다산초당의 사경(바위에 새긴글씨,

다석, 연못, 약천)은 오히려

다산초당을 참으로 그립게 했었다.

대나무 울울한 산길을 지나 동암, 서암으로 나뉘어진 아담한 초당 두채가 자연속에서

정답게 어우러지고 \'丁石\'이라고 힘찬 필체로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만났을때 그분의 손길이 절로 느껴졌던,강진의 다산에 안온히 안겨 있던 초당이 그리웠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절절한 느낌이 덜했던 다산생가를

나오며,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랠겸 수종사를 찾았다.

높고 가파른 수종사 오르는 길, 산딸기가 익어서 멈추게 하던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정약용 선생이 수종사의 풍경과 차를 맛보기 위해 오르곤 했다는 길이다.

야생화가 피어서 눈길을 사로잡는길,그 가파른 길을 사륜구동 자동차가 자주도 출몰해서

자연스런 산행을 방해하던길, 수종사 몇킬로를 남겨놓고 짙은 산안개가 감싸던길..

그 길을 우산을 받치고 오르고 올라 고즈녁한 산사에 도착했을때

풍경이 뎅그렁, 뎅그렁 비소리 보다 맑게 퍼져내리고 있었다.

다산 선생도 어느 비오는 날에 이곳에 올라 물소리처럼 낮게 퍼지는 종소리에

귀를 기울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