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 아줌마
어두운 운동장 구석에서 여기저기 빨간 불빛이 반짝인다. 녀석들이 모여서 피우고 있는 담뱃불 빛이다. 어찌할까 보고있는데 반딧불이도 아닌 것이 휙 날라 간다. 피우던 담배꽁초를 불도 끄지 않고 던져 버리는 것이다. 얼른 뛰어가 버린 꽁초를 들고
"이거 누가 버렸어? 너희들 학생들이 학교에서 담배 피우는 것도 잘못된 것인데 불
도 끄지 않고 어디다 집어던지니?"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금방 담배를 던진 녀석이
"난 아닌데요."하며 시치미를 뗀다.
"너 내가 장님인줄 아니? 다 보고 있었어. 너희들 여기 졸업생이지? 모교에서 이러
면 되겠니? 어서 제대로 꺼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는 담배 피우지마.알았지?"아무리 다그쳐도 대답이 없다. 참 할 일도 없는 아줌마 다 본다는 표정들이다. 이제 알아들었겠지 하고 운동장 돌기를 계속 했다. 몇 바퀴 돌다 보니 이 녀석들이 또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냥 모른 척 지나치려니
"야 그냥 간다."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내가 또 소리를 지르나 보려 했던 모양이다. 참으로 한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녀석들이다. 그런데 이런 녀석들이 너무나 많다는 게 정말로 걱정할 일이다.
저녁을 먹고나서 중학교 운동장으로 나가 걷기 운동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뛰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는데 학생들도 삼삼오오 많이들 몰려온다. 헌데 이 녀석들은 운동을 하러 오는 것이 아니고 담배 피고 술마시고 여자 아이들과 히히덕 거리기 위해서이다. 다. 내자식 같은 녀석들이니 그냥 보고 지나칠 수가 없다. 그래서 눈에 띄는 대로 소리지르고 야단치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날보고 참 용감하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 무서워서 그냥 둬야 한다고들 하지만 그런 어른들의 비겁함이 못된 송아지들의 엉덩이에 난 뿔이 점점 더 커지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야밤에만 나타나는 운동장의 깡패 아줌마가 돼버렸다.
요즘 아이들 참으로 어른 무서운 줄을 모른다. 하나 아니면 둘인 귀한 자식들이라 야단을 안치고 키워서 그런지 지들이 어른인 줄 안다. 하루는 어떤 녀석들이 벤치에서 불을 피우고 있길래 쫓아가서 야단을 쳤더니 한다는 소리가.
"아이고 비가 오려나 허리가 쑤시네."하며 일어서 가 버린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이런 녀석들은 야단을 쳐도 소용이 없다. 도대체 자기네들이 뭘 잘못했는지 조차 모르는 녀석들이니...
"피융"
"뻥"
"팡팡" 밤마다 시끄럽게 터트려 대는 폭죽 소리에 귀가 다 멍멍하다. 폭죽이 몇 방만 터지면 연기에 화약 냄새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아이고 시끄러워''입으로만 중얼거릴 뿐 야단치는 사람이 없다.
"너희들 그만 못하니?"소리를 질렀더니''
"아름답지 않아요?"하며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시끄럽다고 하면 저희들 귀에는 그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고 억지를 부린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쫓아와 야단을 쳐도 들은 척도 않는다. 매번 쫓아다니며 야단을 쳤더니 어떤 아이들이
"저 아줌마야."하며 지나간다. 아마도 밤마다 운동장에서 저희들에게 소리를 질러 대는 이상한 아줌마라는 소리일 게다. 한 번은 어떤 녀석들이 폭죽을 터트리는 것만이 아니고 위험하게 던져 대고 있었다. 그러지 말라고 소리를 질러도 들은 척도 안 한다. 그러더니 급기야 불꽃이 날아와 함께 운동하던 소정 엄마의 티셔츠에 붙었다. 겁이난 녀석이 교문 밖으로 도망을 간다. 거기 서지 못하냐고 소리지르면서 쫓아갔더니
"갔니? 갔니?"하며 모퉁이에 숨어 있다.
"이 녀석아 가긴 어딜 가? 이리 못와?"했더니 마지못해 끌려 나온다.
"아니 고등학생이나 되는 커다란 형이 잘못을 했으면 정중하게 사과를 해야지 도망
을 가? 그럴 일을 왜 해?"했더니
"아줌마가 때릴까 봐요."한다.
"이 녀석아 아줌마가 깡패니? 널 왜 때리니? 그리고 때린다고 네가 맞기나 하니?"
"아줌마가 때리면 그냥 맞아요."하며 히죽 웃는다.
" 너 봐라.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말 안 듣더니. 얼마나 위험한 일이냐?"며 알아듣게 타일렀더니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그럴게요."하고 정중하게 사과를 한다. 이렇듯 야단치고 소리지르고 해야 하는 일이 하루 저녁에도 몇 번씩이 있다. 운동하는 시간보다 아이들 야단치는 시간이 더 많을 때도 있다. 눈으로 안 봐야지 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으니... 그래도 요즘엔 운동장에서 폭죽을 터트리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어도 한마디만 하면 얼른 말을 듣는다. 여러 명이 몰려와서 담배 피고 술마시던 불량 학생들도 많이 줄었다. 아마도 깡패아줌마의 명성(?)을 들었나 보다. 웬 웃기는 아줌마의 잔소리 듣는 게 귀찮아서 안 오는 것 같다. 어떤 때는 나도 혹시나 나의 이런 행동이 우리 아이에게 보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녀석들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남의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참견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 연약한 여자가 당하고 있어도 그저 못 본척 하고. 남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소리질러도 눈도 깜짝 안 한다고 한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서로 도와 가며 사는 것이기도 하지만 옳지 않은 일 틀린 행동에도 관심을 갖고 고쳐 나가며 사는 것이기도 하다. 나쁜 것은 안보고 살면 된다고 담을 쌓다 보면 어느새 어릴 적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던 거인처럼 높아진 담벼락 속에 혼자 갖히게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우아한 사모님보다는 깡패아줌마가 되길 자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