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하게 움직이면서 거울앞에 앉았다..
아침부터 요란한 외출이 기다리고 있었고 거기에 따른 준비가 필요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외출이었지만 망가진 다리땜에 거의 두달간 집에서 갇혀
살아왔던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불뚝 솟아오르면서 조급하게 재촉하고 있었다..
첨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장마 시작이라고 비가 뿌려대더니 그날 아침은 오랫만에 밝은 세상을 보여줬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치장하느라 공 들였는데 이건 너무 아깝다.. 일단 가서 얼굴
한번 확인하고 그리고 악수하고 돌아서자..
몇달전부터 내게 풀지 못하고 쌓여만가는 숙제가 있었다.. 굳이 해결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 생각이 들면서도 다리가 아직도 좀 불편하건만 한번은 그곳에가서 밀린 숙제
를 하기로 맘 먹은 이윤 날 위해서 였다..
문제의 그날은 병원근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느라 서두르고 있었다..
누군가 툭 치는 둔탁함에 잠시 비틀거렸었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니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였다.. 하얀 가운을 입은걸
보면 의사가 맞으니깐..
워낙 많은 숫자속의 사람들과 부딪치며 일하다보니 습관적으로 고갤 꾸벅하고
누구더라 하고.. 한번 더 생각해 봤다..
'''''''' 나 몰라요? 전에 거기 병원에서 한번 같이 일했었는데...''''''''
'''''''' ... .... ''''''''
'''''''' 아... 안녕하세요? ''''''''
근데 사실 머리속은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누구더라..
도무지 머리속에 남아있는 기억을 아무리 짜집기를 해봐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장난스럽게 웃는게 쳐다보고 있자니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순간적인 기지로
맘속에서 어지럽히고 있는 상황을 그냥 재현하기로 맘 먹었을때
'''''''' 나 여기로 이사 왔거든요.. 저녁 한번 같이 먹죠...''''''''
'''''''' 저 지금 집에 가려고 하는참 이었거든요.. 딸아이 데리러 가야 하거든요...''''''''
그 의사라는 남잔 갑자기 놀라는척 하더니 무릎을 탁 치며 하는말
'''''''' 결혼 했어요? 아 .. 참 .. 그럴수 있겠네...''''''''
'''''''' 선생님 결혼 안 했어요? ''''''''
'''''''' 아.. 나 .. 결혼 했지요.. 예전에.. 지금은 혼자 살아요...''''''''
내 참.. 뭔 소릴 하는지 키가 워낙 커서 올려다 보고 얘기하는라 좀 버거워서
수고하라고 한마디 짧게 서둘러 내뱉고는 돌아섰다..
도대체 내 기억속에서 아무리 끄집어대도 나오질 않는 저 남잔 누구더라..
그리고 다리가 망가졌었다.. 태어나서 첨으로 다리가 완전히 걸을수 없을정도로
정지상태가 되었을때 난 집에서 불쌍한 날 거둬들이느라 끙끙대고 있었다..
유일하게 내가 할수 있는일은 아침에 습관적으로 멜 열고 닫고 자판 두드려대고
남들 어찌하고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게 전부가 되버렸다..
다리 어떤데요?
제목은 평범했었다.. 근데 아이디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것이 아니어서 우선은
궁금해져 왔다.. 이거 뭐냐구.. 이 남잔 도대체 날 어찌 아는데 ..
나 ooo 인데.. 병원에서 보이질 않아서 확인했더니 다리가 망가졌다면서요..
그 담부턴 매일 멜 안부가 이어졌고 맘 오락가락하는 얘기도 있었고 병원에서
있었던 얘기를 나름대로 성실하게 보고도 해주고 친구처럼 부담없이 주고받는
얘기들을 쭈욱 써대고 있었다.. 다리 걱정도 해주면서...
때론 감동적인 상황설정까지 해대며 한결같은 정성을 내비치는게 맘 한구석이
부담스럽게 조여왔다..
유난히 큰 키 빼곤 내게 기억이 존재하지도 않은 투명인간 같은 이 남자가
어느순간 아침 멜을 열다가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워졌다..
내 다리가 어느정도 사람모양새가 될 무렵 난 외출후 돌아오면서 그 병원에
들렀다.. 약속한 것도 아니면서 못 만날수도 있었지만 병원에 가면 그냥 만날수
있을것 같은 생각에 무작정 내 맘이 얼룩져오는것 같아서 서둘렀다..
다리가 아파와서 환자대기 의자에 막 앉으려는 순간 큰 키땜에 눈에 확 들어오고도
남을 남자가 있었다.. 워낙 걸음이 빨라서 내 눈에서 사라지려는걸 간신히 저지시키고
나니깐 무모한 일을 치뤄낸 아이처럼 숨이 차올랐다..
어깨를 들썩이며 웬일이냐는 물음에 해야 할일이 있어서 왔다고 했다..
우선은 밖으로 나갔다.. 다리가 아팠지만 서 있을수 밖에 없었고 멜에 대한 확답을
듣고 싶다고 했다..
정신과 의사답게 또박또박 현실적으로 부연설명 해대는 소리가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준비된 대사처럼 난 거기서 빼달라고 쏘아댔다.
그리고 똑똑해져 보이고 싶어서 떳떳한 뭔가를 그어대고 싶어서 손을 내밀었다..
다시 병원에서 만나게 된다면 그땐 좀 더 세련된 간호사로 기억되고 싶어서 악수하고
웃어줬다..
첨으로 악수하던 날 ..
다리 절룩거리며 돌아오면서 그래도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어서 기분이 좋았던건
그건 아직 내가 여자이기 땜이란걸 알았다..
몇달전부터 시작된 헷갈리고 어려웠던 황당한 숙제를 내주신 선생님을 조금만
이해하기로 하니깐 무거운 돌을 가슴에서 밀어낸 깔끔함에 맘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나 아주 잘했어.. 잘났어. 정말...
지금 내가 해야할일은 손 내밀어 악수한것에 대한 칭찬과 잘남이란거 마구마구
떠들어대고 싶다..
진작 그랬어야 했는데 ...
걸어나오면서 중얼거렸다..
다리가 망가져서 그랬던거지 내 잘못은 아니였으니깐...